낯선 분들과의 동행에 처음으로 해보는 렌터카 여행,
거기다가 식사를 대부분 자체 해결하는 것도 처음.
물론 아직 여행 경험이 일천한 것이 원인이겠지만 많은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행을 마치면서 렌터카 계기판을 봤더니 대략 2500km.
그다지 이동이 많지 않았던 첫날과 마지막날을 빼면
사실상 7일간 2500km를 다녔으니 대략 하루에 350km씩 운전한 셈이다.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좋았지만
체력적으로는 꽤나 만만치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느낀건 나는 운전시간이 2시간을 넘어가면 존다. -_-;
마치 지구가 아닌 것 같았던 첫 인상,
광활한 황무지가 주는 고독감,
수많은 폭포들이 만들어내는 유려함.
변화무쌍한 경치와 날씨가 주는 신비함과 긴장감.
언제나 신비한 여행지 목록의 수위에 언급되는 것이 허언이 아니었다.
직접가서 보는 것이 오히려 그 신비감을 더 키우는 것 같다.
일상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는 것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락한 휴식을 주는 대양의 휴양섬들도 좋지만
모험심을 자극시키는 아이슬란드 여행 또한 어떨까 싶다.
다음엔 숙소 예약없이 하이랜드에 캠핑을 도전해볼까?
어쨋든 다음에 또 가볼 기회가 되길.
바이~ 이슬란트(Ísland 아이슬란드어로 아이슬란드를 뜻하는 말)
2015년 3월 22일 일요일
2015년 3월 20일 금요일
Jin과 Rage의 Iceland 여행기 - 20140614 : 번잡했던 Keflavík 공항의 아침
오늘은 아침 8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하기에
새벽 4시무렵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준비하고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차를 몰고 막 주차장을 나서는데
숙소 관리인이 친구들 2명과 함께 딱 마주쳤다.
안그래도 어제 밤 11시 넘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숙소 관리인을 만나서 인사했었는데
그들의 꽐라된 보아하니 불금이라고 밤새도록 논 모양이다;;;
(백야와 불금이 뭔가 묘하게 어울리는 거 같기도?)
여자 한명이 어디가냐고 묻길레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더니
난데없이 "Beau~tiful~" 이란다. 너가 제일 많이 취했구나...
50분 정도를 달려 케플라비크 국제 공항에 도착한 다음
1주일간 같이 고생했던 렌트카를 반납하고 공항에 들어섰다.
아침이니 뭐 그리 번잡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왠걸 사람 엄청 많네.
줄서서 기다리며 비행기 출발 시각을 훑어보니
케플라비크 출발은 죄다 아침에 몰려있다.
10시만 넘어가면 1~2시간에 한대 있는 정도인데
그 이전에는 몇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들이 계속 있으니
이 시간에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시간이 많지 않아 면세점도 대충 돌아보고는 끝냈다.
어짜피 딱히 살만한 것도 별로 없고
와인은 여기보다는 좀 더 큰 공항인 헬싱키 반타 공항에서 사는게 낫겠지.
그런데...
3시간의 비행 후 헬싱키 반타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면세점행.
엥? 그런데 정작 우리가 사려는 와인은
아이슬란드 면세점이 훨씬 종류가 많은 것 같다.
반타 공항 면세점은 주류 종류가 그다지 많지 않네.
(솔직히 우리가 뭐 와인을 그렇게 잘 알아서 골라 마시는건 아니지만)
반타 공항 면세점을 돌아보는데
지난번 들렀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엘크 고기 통조림도 특이하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고...곰 고기 통조림이라니...하나 사봐야하나? -_-a (결국 사지는 않았다)
와인 구매를 마친 다음에
아내는 지난번 들렀을 때 찜 해뒀던 공항내 펍에서 맥주 한잔.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새벽 4시무렵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준비하고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차를 몰고 막 주차장을 나서는데
숙소 관리인이 친구들 2명과 함께 딱 마주쳤다.
안그래도 어제 밤 11시 넘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숙소 관리인을 만나서 인사했었는데
그들의 꽐라된 보아하니 불금이라고 밤새도록 논 모양이다;;;
(백야와 불금이 뭔가 묘하게 어울리는 거 같기도?)
여자 한명이 어디가냐고 묻길레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더니
난데없이 "Beau~tiful~" 이란다. 너가 제일 많이 취했구나...
50분 정도를 달려 케플라비크 국제 공항에 도착한 다음
1주일간 같이 고생했던 렌트카를 반납하고 공항에 들어섰다.
아침이니 뭐 그리 번잡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왠걸 사람 엄청 많네.
아니 새벽 6시에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
줄서서 기다리며 비행기 출발 시각을 훑어보니
케플라비크 출발은 죄다 아침에 몰려있다.
10시만 넘어가면 1~2시간에 한대 있는 정도인데
그 이전에는 몇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들이 계속 있으니
이 시간에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아마도 북유럽 신화 속 오딘의 까마귀를 상징하는 듯한 천장의 장식 |
시간이 많지 않아 면세점도 대충 돌아보고는 끝냈다.
어짜피 딱히 살만한 것도 별로 없고
와인은 여기보다는 좀 더 큰 공항인 헬싱키 반타 공항에서 사는게 낫겠지.
그런데...
3시간의 비행 후 헬싱키 반타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면세점행.
엥? 그런데 정작 우리가 사려는 와인은
아이슬란드 면세점이 훨씬 종류가 많은 것 같다.
반타 공항 면세점은 주류 종류가 그다지 많지 않네.
(솔직히 우리가 뭐 와인을 그렇게 잘 알아서 골라 마시는건 아니지만)
반타 공항 면세점을 돌아보는데
지난번 들렀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고...곰 고기;;; |
엘크 고기 통조림도 특이하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고...곰 고기 통조림이라니...하나 사봐야하나? -_-a (결국 사지는 않았다)
와인 구매를 마친 다음에
아내는 지난번 들렀을 때 찜 해뒀던 공항내 펍에서 맥주 한잔.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2015년 3월 19일 목요일
Jin과 Rage의 Iceland 여행기 - 20140613 (3) : 마지막 밤은 라이브 카페에서
상점가를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다니다가 멈춰섰다.
한 가게의 열려있는 문으로 보인 판매대의 먹음직스런 케익들이
우리를 홀렸기 때문이다.
우리를 멈춰 세운 곳은 산드홀트(Sandholt)라는 베이커리였다.
케익을 보고 들어섰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손에는 이미 쿠키와 마말레이드도...
커피 한 잔과 맛있는 케익으로 충전을 하고는 다시 시내를 다녔다.
다시 숙소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호수와 시청이 보인다.
시청으로 걸어가보니 보이는 간판.
시청 안에 레스토랑이 있나보다.
하긴 관공서라는 것만 생각하지 않으면
호숫가 레스토랑으로서 좋은 위치긴 하다.
시청에서 북쪽을 향하면
레이캬비크 대성당(Reykjavik Cathedral)을 볼 수 있다.
아이슬란드 인구의 3/4은 개신교인 루터교를 믿고 있고
카톨릭 신자는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
레이캬비크 대성당은 Cathedral이라기엔 앙증맞은 규모.
성당과 옆의 국회의사당(Alþingi 알씽키) 앞에는
아우스튀르뵈틀뤼르(Austurvöllur) 공원이 있고
공원 가운데에 동상이 하나 서 있다.
공원 가운데 서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아이슬란드 독립 운동의 리더였던 요운 시귀르드손(Jón Sigurðsson).
현재 그의 생일은 아이슬란드의 국경일이다.
국회 의사당 앞에는 The Black Cone이란 제목의 조형물이 있다.
프랑스 혁명 1793년 인권선언문의 일부까지 차용되어있는 이 작품은
스페인 예술가 Santiago Sierra의 작품이다.
어찌보면 쌩뚱맞기도 한 이 작품이 이 곳에 있는 이유는
2009년에 있었던 아이슬란드 반정부시위를 기념하기 위함.
12세기 종교재판으로 박해받은 이가 입었던
Black cone 모양의 모자가 단단한 돌을 쪼갠 형상도 그렇거니와
차용되어있는 문장을 읽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하다.
쿠테타로 인해 정식채택되지 못했던
1793년 인권선언문을 차용하면서까지
(정식 채택된 프랑스 인권선언문은 1789년에 작성된 것이다)
불복종에 대한 권리와 그 기념물을 떡하니 국회의사당 앞에 둔 것은
의회가 본인의 역할을 되새길 수 밖에 없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민주 의회가 있었던 나라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싶다.
여행 내내 기념품점이 보이면 선물용으로 살 만한 것이 있는지 돌아봤지만
물가가 워낙 비싼지라 마땅한 상품을 찾지 못했었다.
그래도 레이캬비크에 돌아가면 뭔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마찬가지 상황.
결국 1인당 비누 하나씩을 샀다만 비누도 1개 만원꼴이다 -_-;
그렇게 기념품용 비누를 사면서 보니 눈에 띄는 마그넷이 있어 찰칵.
이제 저녁을 먹어야지.
마지막 식사는 고래고기와 랍스터 수프로 유명한 가게 Sea Baron.
(아이슬란드어로 사이그레이피튼 Sægreifinn)
매대에 놓여있는 상품을 고르면 익혀서 주는데
고래고기, 조개 관자, 새우, 생선 토막등을 고를 수 있다.
랍스터 수프는 주문할 때 같이 얘기하면 된다.
랍스터 수프 하나와 아내는 관자, 나는 고래고기를 주문한 다음
자리를 잡고 10여분 기다리니 식사가 나왔다.
랍스터 수프는 향신료 탓인지 약간 똠얌꿍스러웠고
고래고기 스테이크는 약간 질기긴 했지만 그다지 느끼하진 않았다.
(우리나라 고래고기 수육은 기름이 많아서 꽤나 느끼하다)
아 이렇게 얘기했다고 절대 맛없는거 아니다. 맛 괜찮다.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하르파(Harpa) 앞으로 갔다.
하르파는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콘서트홀.
원래 여행 출발 전에 하르파에서 공연을 하나 볼까 생각도 했었다만
레이캬비크에 있는 날 공연이
딱히 보고 싶은 내용이 아니라서 예약하지 않았다.
대신 건물 구경만 좀 하고 가자.
2011년에 완공된 하르파는 2013 미스 반 데어 로에 상을 수상하였는데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철근과 유리 위주의 건축법의 창시자임을 생각하면
하르파는 그야말로 이 상에 딱 어울리는 건물일 듯 하다.
다시 상가 골목쪽으로 걸어가자.
어느 가게 앞에서 무료로 수프 시식을 하기에
우리도 냉큼 한 그릇 얻어 먹었다.
먹어보니 뭔가 아까 먹은 랍스터 수프와 맛이 비슷하다.
공짜 수프를 맛있게 먹고난 후
아이슬란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위해 라이브 카페로 향했다.
낮에 Tax refund를 받기 위해 들렀던 관광 안내센터에다가
라이브 카페를 추천해달라고 물어봤었는데
추천받은 곳들 중에 카페 로젠베르그(Café Rosenberg)를 가기로 했다.
공연관람비를 내고 들어가니 공연은 이미 진행중이었고
자리도 몇자리 남아있지않아
불편하긴해도 우선은 화장실 앞 자리에 착석.
음료 하나씩 (아내는 당연히 맥주 ^^) 마시며 즐겁게 음악감상하다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 11시가 되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하니 얼른 숙소로 돌아가 쉬어야겠다.
한 가게의 열려있는 문으로 보인 판매대의 먹음직스런 케익들이
우리를 홀렸기 때문이다.
우리를 멈춰 세운 곳은 산드홀트(Sandholt)라는 베이커리였다.
케익을 보고 들어섰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손에는 이미 쿠키와 마말레이드도...
커피 한 잔과 맛있는 케익으로 충전을 하고는 다시 시내를 다녔다.
다시 숙소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호수와 시청이 보인다.
시청 앞 인공호수. 사진 오른편의 건물이 시청이다 |
시청으로 걸어가보니 보이는 간판.
시청 안에 레스토랑이 있나보다.
하긴 관공서라는 것만 생각하지 않으면
호숫가 레스토랑으로서 좋은 위치긴 하다.
시청에서 북쪽을 향하면
레이캬비크 대성당(Reykjavik Cathedral)을 볼 수 있다.
아이슬란드 인구의 3/4은 개신교인 루터교를 믿고 있고
카톨릭 신자는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
레이캬비크 대성당은 Cathedral이라기엔 앙증맞은 규모.
레이캬비크 대(?)성당 |
성당과 옆의 국회의사당(Alþingi 알씽키) 앞에는
아우스튀르뵈틀뤼르(Austurvöllur) 공원이 있고
공원 가운데에 동상이 하나 서 있다.
공원 가운데 서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아이슬란드 독립 운동의 리더였던 요운 시귀르드손(Jón Sigurðsson).
현재 그의 생일은 아이슬란드의 국경일이다.
국회 의사당 앞에는 The Black Cone이란 제목의 조형물이 있다.
프랑스 혁명 1793년 인권선언문의 일부까지 차용되어있는 이 작품은
스페인 예술가 Santiago Sierra의 작품이다.
어찌보면 쌩뚱맞기도 한 이 작품이 이 곳에 있는 이유는
2009년에 있었던 아이슬란드 반정부시위를 기념하기 위함.
12세기 종교재판으로 박해받은 이가 입었던
Black cone 모양의 모자가 단단한 돌을 쪼갠 형상도 그렇거니와
차용되어있는 문장을 읽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하다.
정부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때, 저항은 시민들을 위한 가장 성스러운 권한이며 필수적인 의무다 |
쿠테타로 인해 정식채택되지 못했던
1793년 인권선언문을 차용하면서까지
(정식 채택된 프랑스 인권선언문은 1789년에 작성된 것이다)
불복종에 대한 권리와 그 기념물을 떡하니 국회의사당 앞에 둔 것은
의회가 본인의 역할을 되새길 수 밖에 없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민주 의회가 있었던 나라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싶다.
여행 내내 기념품점이 보이면 선물용으로 살 만한 것이 있는지 돌아봤지만
물가가 워낙 비싼지라 마땅한 상품을 찾지 못했었다.
그래도 레이캬비크에 돌아가면 뭔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마찬가지 상황.
결국 1인당 비누 하나씩을 샀다만 비누도 1개 만원꼴이다 -_-;
그렇게 기념품용 비누를 사면서 보니 눈에 띄는 마그넷이 있어 찰칵.
내용이 참... |
이제 저녁을 먹어야지.
마지막 식사는 고래고기와 랍스터 수프로 유명한 가게 Sea Baron.
(아이슬란드어로 사이그레이피튼 Sægreifinn)
매대에 놓여있는 상품을 고르면 익혀서 주는데
고래고기, 조개 관자, 새우, 생선 토막등을 고를 수 있다.
랍스터 수프는 주문할 때 같이 얘기하면 된다.
고래고기 |
랍스터 수프 하나와 아내는 관자, 나는 고래고기를 주문한 다음
자리를 잡고 10여분 기다리니 식사가 나왔다.
아내의 외식에 술이 빠질리가...구틀(Gull = Gold) 맥주도 주문했다 |
랍스터 수프는 향신료 탓인지 약간 똠얌꿍스러웠고
고래고기 스테이크는 약간 질기긴 했지만 그다지 느끼하진 않았다.
(우리나라 고래고기 수육은 기름이 많아서 꽤나 느끼하다)
아 이렇게 얘기했다고 절대 맛없는거 아니다. 맛 괜찮다.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하르파(Harpa) 앞으로 갔다.
하르파는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콘서트홀.
원래 여행 출발 전에 하르파에서 공연을 하나 볼까 생각도 했었다만
레이캬비크에 있는 날 공연이
딱히 보고 싶은 내용이 아니라서 예약하지 않았다.
대신 건물 구경만 좀 하고 가자.
2011년에 완공된 하르파는 2013 미스 반 데어 로에 상을 수상하였는데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철근과 유리 위주의 건축법의 창시자임을 생각하면
하르파는 그야말로 이 상에 딱 어울리는 건물일 듯 하다.
다시 상가 골목쪽으로 걸어가자.
어느 가게 앞에서 무료로 수프 시식을 하기에
우리도 냉큼 한 그릇 얻어 먹었다.
먹어보니 뭔가 아까 먹은 랍스터 수프와 맛이 비슷하다.
공짜 수프를 맛있게 먹고난 후
아이슬란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위해 라이브 카페로 향했다.
낮에 Tax refund를 받기 위해 들렀던 관광 안내센터에다가
라이브 카페를 추천해달라고 물어봤었는데
추천받은 곳들 중에 카페 로젠베르그(Café Rosenberg)를 가기로 했다.
공연 관람비를 내면 티켓 대신 손목에 x 표시를 해준다 |
공연관람비를 내고 들어가니 공연은 이미 진행중이었고
자리도 몇자리 남아있지않아
불편하긴해도 우선은 화장실 앞 자리에 착석.
무대 옆에는 공연 스케줄이 적혀있다 |
음료 하나씩 (아내는 당연히 맥주 ^^) 마시며 즐겁게 음악감상하다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 11시가 되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하니 얼른 숙소로 돌아가 쉬어야겠다.
2015년 3월 15일 일요일
Jin과 Rage의 Iceland 여행기 - 20140613 (2) : Reykjavík 시내 구경
핫도그를 먹고 잠시 근처를 잠시 둘러보다가
한창 버스킹중인 밴드가 있어서 관람.
아이슬란드는 30만명의 인구 중 절반이 음악 활동을 한다고 한다.
많지도 않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Sigur Rós나 Björk같은
세계적인 뮤지션이 나오는 것이 이런 기반 덕분이 아닐까?
이제 체크인 가능한 시간이 되어가니 숙소로 가야겠다.
다시 주차장에 돌아가서 차를 찾아야지...하는데
주차장에 가니 단속하시는 분이 우리 차에 딱지를 붙이려 하신다 -_-;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니 아차차...
주차장에 차를 댄 다음 주차비를 선불로 내는데
낸 다음에 받은 영수증 스티커를 차에 붙여놔야하는 거였다.
아내가 그걸 안붙이고 계속 주머니에 넣고 다닌 것;;;
그래도 다행히 딱지 받기 직전에 우리가 도착해서
가지고 있던 스티커를 보여줄 수 있었다.
단속하시는 아주머니도 여행객들의 실수라고 생각했는지
우리가 스티커를 보여주자 별 말없이 보내주셨다.
얼른 숙소로 가자.
오늘 숙소는 플라우네탄 아파트먼트(Plánetan Apartments).
구글맵에서 검색을 하고 이동, 그런데...뭔가 이상하다.
이거 또 구글맵이 엉뚱한 곳을 가르쳐주나보다. -_-
(여러분 아이슬란드 가면 네비게이션 꼭 빌리세요 OTZ)
결국 아내가 숙소로 전화하니 그쪽 얘기로는 우리가 지나쳐간 거 같단다.
우리가 있는 도로명을 알려주니
숙소 관리인이 우리쪽으로 직접 찾아와줬다.
숙소관리인이 꽤나 젊은 남자네.
이렇게 또다른 우여곡절 끝에 숙소 도착.
그래도 숙소는 상당히 넓고 깨끗하고 인테리어도 근사한 것이
이번 여행에서 지낸 숙소 중에 가장 훌륭했다.
(물론 경치만큼은 아쿠레이리의 37 Apartment가 갑)
이제 레이캬비크 시내구경을 나가보자.
아내와 둘이서 엘레베이터를 탔는데...어라 왜이러지?
층계 버튼은 커녕 문을 여닫는 버튼도 반응이 없다.
꼼짝없이 엘레베이터에 갇힌 셈.
우리 둘다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엘레베이터를 탔어도
갇혀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멀리 아이슬란드 와서 별 일을 다 겪는구나.
비상버튼 눌러서 연결된 안내원에게 영어로 대충 설명하고
우리 숙소 관리인에게도 전화해서 알렸다.
다행히 10여분 지나서 문이 열렸지만
아내는 겁을 먹었는지 걸어내려 가잔다.
이제부터 시내 구경 시작.
우선 도시 번화가에 가까운 하르파 근처로 가자.
위 사진의 오른쪽 끝에 있는 것이 하르파,
그리고 왼쪽 끝에 있는 건물이 총리관저다.
언덕 위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874년에 처음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사람이자
레이캬비크란 도시 이름을 정한
잉코울퓌르 아르나르손(Ingólfur Arnarson)이다.
총리 관저 쪽으로 걸어내려가보자.
자그레브에 갔었을 때 봤던 크로아티아 대통령 관저도
시내 한복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놀랐다만
그래도 상당히 큰 건물에 고풍스러운 멋이라도 있었다.
여기는 한술 더 떠서 밋밋한 외관의 약간 큰 주택 수준.
아이슬란드는 대통령이 얼굴마담에 가깝고
총리가 실질적인 수장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소박한 공관이다.
총리 관저 왼편에 보이는 동상은 덴마크의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앙 9세.
당시 덴마크 통치하에 있던 아이슬란드에게
자체 헌법과 자치권을 허용했기에 아마도 동상이 세워져 있나보다.
그런데 사실 그 과정이 왕의 의지가 아니라
본인의 지지세력이 약화됨으로 인해
국민들의 요구사항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그의 동상은 오히려 본인에게는 굴욕적일지도 모르겠다.
관저 오른편에 있는 동상은 덴마크가 임명한 초대 총리였던
하트네스 하프스테인(Hannes Hafstein)의 동상.
총리관저를 지나 상점들이 모여있는 번화가쪽으로 향했다.
아이슬란드의 다른 마을들에서도 그랬지만
곳곳의 아기자기한 페인팅이나 장식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한창 버스킹중인 밴드가 있어서 관람.
아이슬란드는 30만명의 인구 중 절반이 음악 활동을 한다고 한다.
많지도 않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Sigur Rós나 Björk같은
세계적인 뮤지션이 나오는 것이 이런 기반 덕분이 아닐까?
이제 체크인 가능한 시간이 되어가니 숙소로 가야겠다.
다시 주차장에 돌아가서 차를 찾아야지...하는데
주차장에 가니 단속하시는 분이 우리 차에 딱지를 붙이려 하신다 -_-;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니 아차차...
주차장에 차를 댄 다음 주차비를 선불로 내는데
낸 다음에 받은 영수증 스티커를 차에 붙여놔야하는 거였다.
아내가 그걸 안붙이고 계속 주머니에 넣고 다닌 것;;;
그래도 다행히 딱지 받기 직전에 우리가 도착해서
가지고 있던 스티커를 보여줄 수 있었다.
단속하시는 아주머니도 여행객들의 실수라고 생각했는지
우리가 스티커를 보여주자 별 말없이 보내주셨다.
얼른 숙소로 가자.
오늘 숙소는 플라우네탄 아파트먼트(Plánetan Apartments).
구글맵에서 검색을 하고 이동, 그런데...뭔가 이상하다.
이거 또 구글맵이 엉뚱한 곳을 가르쳐주나보다. -_-
(여러분 아이슬란드 가면 네비게이션 꼭 빌리세요 OTZ)
결국 아내가 숙소로 전화하니 그쪽 얘기로는 우리가 지나쳐간 거 같단다.
우리가 있는 도로명을 알려주니
숙소 관리인이 우리쪽으로 직접 찾아와줬다.
숙소관리인이 꽤나 젊은 남자네.
이렇게 또다른 우여곡절 끝에 숙소 도착.
그래도 숙소는 상당히 넓고 깨끗하고 인테리어도 근사한 것이
이번 여행에서 지낸 숙소 중에 가장 훌륭했다.
(물론 경치만큼은 아쿠레이리의 37 Apartment가 갑)
깔끔하고 널찍한 숙소 (이 사진에 보이는 면적의 2배로 생각하면 됨) |
일반 거주공간을 숙소로 사용하는 것이라 가정집 느낌이 물씬 난다 |
이제 레이캬비크 시내구경을 나가보자.
아내와 둘이서 엘레베이터를 탔는데...어라 왜이러지?
층계 버튼은 커녕 문을 여닫는 버튼도 반응이 없다.
꼼짝없이 엘레베이터에 갇힌 셈.
우리 둘다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엘레베이터를 탔어도
갇혀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멀리 아이슬란드 와서 별 일을 다 겪는구나.
비상버튼 눌러서 연결된 안내원에게 영어로 대충 설명하고
우리 숙소 관리인에게도 전화해서 알렸다.
다행히 10여분 지나서 문이 열렸지만
아내는 겁을 먹었는지 걸어내려 가잔다.
이제부터 시내 구경 시작.
우선 도시 번화가에 가까운 하르파 근처로 가자.
위 사진의 오른쪽 끝에 있는 것이 하르파,
그리고 왼쪽 끝에 있는 건물이 총리관저다.
언덕 위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874년에 처음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사람이자
레이캬비크란 도시 이름을 정한
잉코울퓌르 아르나르손(Ingólfur Arnarson)이다.
총리 관저 쪽으로 걸어내려가보자.
총리 관저 |
자그레브에 갔었을 때 봤던 크로아티아 대통령 관저도
시내 한복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놀랐다만
그래도 상당히 큰 건물에 고풍스러운 멋이라도 있었다.
여기는 한술 더 떠서 밋밋한 외관의 약간 큰 주택 수준.
아이슬란드는 대통령이 얼굴마담에 가깝고
총리가 실질적인 수장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소박한 공관이다.
총리 관저 왼편에 보이는 동상은 덴마크의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앙 9세.
당시 덴마크 통치하에 있던 아이슬란드에게
자체 헌법과 자치권을 허용했기에 아마도 동상이 세워져 있나보다.
그런데 사실 그 과정이 왕의 의지가 아니라
본인의 지지세력이 약화됨으로 인해
국민들의 요구사항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그의 동상은 오히려 본인에게는 굴욕적일지도 모르겠다.
관저 오른편에 있는 동상은 덴마크가 임명한 초대 총리였던
하트네스 하프스테인(Hannes Hafstein)의 동상.
총리관저를 지나 상점들이 모여있는 번화가쪽으로 향했다.
아이슬란드의 다른 마을들에서도 그랬지만
곳곳의 아기자기한 페인팅이나 장식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2015년 3월 9일 월요일
Jin과 Rage의 Iceland 여행기 - 20140613 (1) : 그들의 자존심 같았던 Hallgrímskirkja
이제 여행도 이틀이 남았다.
(내일은 아침에 출국하므로 실질적으로는 마지막 날이다.)
오늘 들를 첫번째 코스는 남쪽으로 내려가서
흐베라게르디(Hveragerði) 마을 근처에 있는
레이캬달뤼르(Reykjadalur) 계곡.
보르가르네스를 떠나 링로드를 타고 남쪽을 향하다보면
30분쯤 지나서 해저터널을 만나게 된다.
(사실은 어제도 여기를 통과했다)
대략 7000~8000원(1000 ISK)의 통과 비용이 들지만 이 돈을 아끼려들다간
15분만에 안되서 갈 수 있는 거리를 45분이나 걸려서 돌아가야한다.
아이슬란드의 터널은 출발과 끝에서의 시간차로 과속여부를 체크하니
터널에서 만큼은 절대 과속 금물.
터널을 지나 계속 링로드를 달려 레이캬비크도 지나쳤다.
그런데 아침부터 날씨가 썩 좋지는 않았다만
레이캬비크를 지나서부터는 심한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동부 해안을 지날때 보다도 더 심하네. 10여 미터 앞이 겨우 보일 정도.
오히려 앞에 차가 있어서 앞차의 브레이크등이 보여서 다행이었지
아무 것도 보이는게 없었다면 오히려 무서워서 못달릴 것 같았다.
(다행히 수도 근처인지라 같이 달리는 차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이 안개 속에서도 과속 할 사람들은 다 하네;;;
어쨋건 출발한지 1시간 반이 좀 넘어서 무사히 흐베라게르디에 도착했다.
링로드에서 흐베라게르디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계속 직진하면
레이캬달뤼르 계곡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트래킹을 하러 온 사람들이나 혹은 승마하러 온 사람들도 있었다만
우리는 이 계곡의 Hot river, 즉 온천 계곡물에 발 담그러 왔다.
(족욕 마니아 아내님)
관광객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목욕하러 들르는 온천 계곡이라나.
주차를 하고 계곡쪽으로 걸어가니 조그만 개울이 보인다.
군데군데에서 수증기도 올라와 온천지대임도 느껴진다.
흘러가는 계곡물에 손을 살짝 대어보니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적지근한 온도.
그리고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온은 따뜻해졌다.
약간 걸어올라가다가 웅덩이가 보여 다시 손을 담궈보니
여기는 완연히 따뜻한, 아니 살짝 뜨거울 정도의 온도.
전에 족욕을 즐겼던 뮈바튼 근처의 그르요우타그야우와 비슷할 듯.
쌀쌀한 날씨지만 넓은 초원에서 따뜻한 물에 족욕을 하니
기분이 나른해지며 1주일간의 여행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20여분간 물장구치며 즐겼던 족욕을 마치고
(사실은 뜨거워서 계속 담그고만 있을 수가 없었...)
이제는 마지막 여정지인 레이캬비크로 갈 차례.
흐베라게르디에 와서는 안개가 덜하길레 괜찮을 줄 알았더니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짙은 안개속이었다.
(이봐 지금 낮 12시야;;;)
레이캬비크와 흐베라게르디 중간에 있는 고지대만 안개가 심한듯.
가다가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앞에 공사 차량이 느릿느릿 길을 막아섰다.
그래서 추월을 하려고 마음 먹고 왼쪽 차선으로 들어섰다만
이거 구불구불한 산길에 안개가 심하니 엑셀을 막 밟기는 겁나고 그래서
(산길이지만 우리나라 같은 가드레일도 없다)
한동안 추월하지 못하고 나란히 달렸다.
마침내 조금 평탄한데서 추월은 했다만
내 뒤에 줄줄이 추월하려던 차량들은 나때문에 못하고 있었으니
지나가면서 내쪽을 쳐다보는게 느껴져 진땀이 흐른다.
그냥 난 얌전히 따라갈 걸 그랬나보다. ㅠㅠ
외지인 여행객입니다. 봐주세요 여러분들;;;
어쨋든 50여분을 달려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ík)에 들어왔다.
우선은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하틀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부터 들르자.
사람 얼마 살지도 않는 나라지만
그래도 나름 12만명(수도권 전체로는 25만)이 사는 수도인지라
여태껏 경험할 수 없었던 교통혼잡(-_-)이 느껴진다.
주차할 곳을 찾느라 (잠깐이었지만) 뱅뱅 도는 것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아쿠레이리 교회와 마찬가지로 주상절리를 표현하고 있으나
훨씬더 미려하고 웅장한 하틀그림스키르캬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17세기 시인이자 성직자인
하틀그리뮈르 폐튀르손(Hallgrímur Pétursson)의 교회라는 뜻.
(Hallgrím + s(의) + kirkja(교회))
교회 앞의 동상은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으로 여겨지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바이킹 레이퓌르 에릭손(Leifur Eriksson)의 동상.
그가 그린란드와 북아메리카(빈란드)를 탐험한 내용의 서사시가
중세 아이슬란드의 대표적 사가인 '빈란드 사가(Vinland Sagas)'다.
이곳은 마치 아이슬란드 역사의 자존심의 요약본같다.
우리가 도착했을 무렵 교회에서는 장례식이 진행중이라
관광객은 오후 2시까지 입장이 금지되어있었다.
교회 종탑에 올라가 레이캬비크 전망을 볼 수가 있다는데
뭐, 나중에 다시 시내 들러서 생각나면 가보든가 해야겠다.
(라고 하고는 나중에 다시 안갔다 -ㅅ-)
다시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아직 숙소 체크인 시간이 채 되지 않았기에
하르파 앞으로 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여행 내내 볼 수 없었던 유료주차장을 레이캬비크에서 만나는구나.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보니 길 건너편에 핫도그 집이 뙇!
빌 클린턴이 먹고는 감탄했다는
바이야린스 베스튀 필쉬르(Bæjarins Bestu Pylsur).
여기서 우리의 점심식사를 해결하기로 즉석으로 결정했다.
핫도그는 양파튀김과 특제 겨자소스, 그리고 양고기 소시지로 만들었는데
단순하지만 바삭한 양파튀김의 식감,
그리고 소스와 고기의 어울림이 꽤 괜찮네.
가볍게 그리고 저렴하게 요기하기에는 안성맞춤.
(내일은 아침에 출국하므로 실질적으로는 마지막 날이다.)
오늘 들를 첫번째 코스는 남쪽으로 내려가서
흐베라게르디(Hveragerði) 마을 근처에 있는
레이캬달뤼르(Reykjadalur) 계곡.
보르가르네스를 떠나 링로드를 타고 남쪽을 향하다보면
30분쯤 지나서 해저터널을 만나게 된다.
(사실은 어제도 여기를 통과했다)
대략 7000~8000원(1000 ISK)의 통과 비용이 들지만 이 돈을 아끼려들다간
15분만에 안되서 갈 수 있는 거리를 45분이나 걸려서 돌아가야한다.
아이슬란드의 터널은 출발과 끝에서의 시간차로 과속여부를 체크하니
터널에서 만큼은 절대 과속 금물.
[구글맵 펌] 빨간색 길 15분, 파란색 길 45분 |
터널을 지나 계속 링로드를 달려 레이캬비크도 지나쳤다.
그런데 아침부터 날씨가 썩 좋지는 않았다만
레이캬비크를 지나서부터는 심한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동부 해안을 지날때 보다도 더 심하네. 10여 미터 앞이 겨우 보일 정도.
오히려 앞에 차가 있어서 앞차의 브레이크등이 보여서 다행이었지
아무 것도 보이는게 없었다면 오히려 무서워서 못달릴 것 같았다.
(다행히 수도 근처인지라 같이 달리는 차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이 안개 속에서도 과속 할 사람들은 다 하네;;;
어쨋건 출발한지 1시간 반이 좀 넘어서 무사히 흐베라게르디에 도착했다.
링로드에서 흐베라게르디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계속 직진하면
레이캬달뤼르 계곡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트래킹을 하러 온 사람들이나 혹은 승마하러 온 사람들도 있었다만
우리는 이 계곡의 Hot river, 즉 온천 계곡물에 발 담그러 왔다.
(족욕 마니아 아내님)
관광객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목욕하러 들르는 온천 계곡이라나.
주차를 하고 계곡쪽으로 걸어가니 조그만 개울이 보인다.
군데군데에서 수증기도 올라와 온천지대임도 느껴진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서는 이렇게 진흙이 펄펄 끓고 있다
흘러가는 계곡물에 손을 살짝 대어보니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적지근한 온도.
그리고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온은 따뜻해졌다.
약간 걸어올라가다가 웅덩이가 보여 다시 손을 담궈보니
여기는 완연히 따뜻한, 아니 살짝 뜨거울 정도의 온도.
전에 족욕을 즐겼던 뮈바튼 근처의 그르요우타그야우와 비슷할 듯.
쌀쌀한 날씨지만 넓은 초원에서 따뜻한 물에 족욕을 하니
기분이 나른해지며 1주일간의 여행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20여분간 물장구치며 즐겼던 족욕을 마치고
(사실은 뜨거워서 계속 담그고만 있을 수가 없었...)
이제는 마지막 여정지인 레이캬비크로 갈 차례.
흐베라게르디에 와서는 안개가 덜하길레 괜찮을 줄 알았더니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짙은 안개속이었다.
(이봐 지금 낮 12시야;;;)
레이캬비크와 흐베라게르디 중간에 있는 고지대만 안개가 심한듯.
가다가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앞에 공사 차량이 느릿느릿 길을 막아섰다.
그래서 추월을 하려고 마음 먹고 왼쪽 차선으로 들어섰다만
이거 구불구불한 산길에 안개가 심하니 엑셀을 막 밟기는 겁나고 그래서
(산길이지만 우리나라 같은 가드레일도 없다)
한동안 추월하지 못하고 나란히 달렸다.
마침내 조금 평탄한데서 추월은 했다만
내 뒤에 줄줄이 추월하려던 차량들은 나때문에 못하고 있었으니
지나가면서 내쪽을 쳐다보는게 느껴져 진땀이 흐른다.
그냥 난 얌전히 따라갈 걸 그랬나보다. ㅠㅠ
외지인 여행객입니다. 봐주세요 여러분들;;;
어쨋든 50여분을 달려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ík)에 들어왔다.
우선은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하틀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부터 들르자.
사람 얼마 살지도 않는 나라지만
그래도 나름 12만명(수도권 전체로는 25만)이 사는 수도인지라
여태껏 경험할 수 없었던 교통혼잡(-_-)이 느껴진다.
주차할 곳을 찾느라 (잠깐이었지만) 뱅뱅 도는 것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중 하나로 꼽히는 하틀그림스키르캬 |
아쿠레이리 교회와 마찬가지로 주상절리를 표현하고 있으나
훨씬더 미려하고 웅장한 하틀그림스키르캬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17세기 시인이자 성직자인
하틀그리뮈르 폐튀르손(Hallgrímur Pétursson)의 교회라는 뜻.
(Hallgrím + s(의) + kirkja(교회))
교회 앞의 동상은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으로 여겨지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바이킹 레이퓌르 에릭손(Leifur Eriksson)의 동상.
그가 그린란드와 북아메리카(빈란드)를 탐험한 내용의 서사시가
중세 아이슬란드의 대표적 사가인 '빈란드 사가(Vinland Sagas)'다.
이곳은 마치 아이슬란드 역사의 자존심의 요약본같다.
교회 입구 위의 현판. 무슨말이려나? |
우리가 도착했을 무렵 교회에서는 장례식이 진행중이라
관광객은 오후 2시까지 입장이 금지되어있었다.
교회 종탑에 올라가 레이캬비크 전망을 볼 수가 있다는데
뭐, 나중에 다시 시내 들러서 생각나면 가보든가 해야겠다.
(라고 하고는 나중에 다시 안갔다 -ㅅ-)
다시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아직 숙소 체크인 시간이 채 되지 않았기에
하르파 앞으로 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여행 내내 볼 수 없었던 유료주차장을 레이캬비크에서 만나는구나.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보니 길 건너편에 핫도그 집이 뙇!
빌 클린턴이 먹고는 감탄했다는
바이야린스 베스튀 필쉬르(Bæjarins Bestu Pylsur).
여기서 우리의 점심식사를 해결하기로 즉석으로 결정했다.
핫도그는 양파튀김과 특제 겨자소스, 그리고 양고기 소시지로 만들었는데
단순하지만 바삭한 양파튀김의 식감,
그리고 소스와 고기의 어울림이 꽤 괜찮네.
가볍게 그리고 저렴하게 요기하기에는 안성맞춤.
단순한 핫도그 가게지만 8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
2015년 3월 5일 목요일
Jin과 Rage의 Iceland 여행기 - 20140612 (3) : 위급했던 '응'베리르
씽크베틀리르로 가는 도중에 경치가 좋은 곳이 있어 잠시 멈추고 찰칵.
(저 너머에 보이는 호수는 씽크바틀라바튼(Þingvallavatn).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호수다.)
구글맵이 가르쳐주는 대로 차를 몰고 계속해서 가는데
중간에 씽크베틀리르를 가르키는 방향이
우리가 가는 방향과 다른 곳으로 알려주는 도로표지판이 보여서
뭐지 우리 엉뚱한데 가는 건가? 하고 긴장했지만
어쨋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씽크베틀리르 공원이 넓어서
들어오는 입구가 여러 곳이라 생긴 혼란이었다.
어느쪽으로 들어왔어도 상관 없었네.
대표적 관광지라 그런지 넓은 주차장과 안내센터 건물이 있고
무엇보다 공원 입장료를 받는다. -o-
(아이슬란드 자연 관광지 거의 대부분은 입장료가 없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보자.
씽크베틀리르는 지질학적으로 유라시아판과 아메리카판이 만나는 곳.
그래서 곳곳이 이렇게 갈라진 계곡으로 형성되어있다.
따라서 유럽과 아메리카를 한걸음에 뛰어 오갈 수 있달까?
(물론 이 계곡은 아이슬란드 전역에 형성되어있다)
유라시아판과 아메리카판의 사이에서는 지금도 땅이 솟아오르고 있어서
아이슬란드는 계속해서 국토가 넓어지고 있기도 하다.
씽크베틀리르가 중요한 또다른 이유가 있는데
이곳이 세계 최초로 민주적 의회가 있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계곡의 초원지대에 아이슬란드 각지에서 모인이들이 천막을 치고
민주 의회를 시작했던 것이 무려 10세기 초반인 930년 무렵.
무인도였던 아이슬란드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874년이라고 하니
사실상 국가의 초기부터 민주국가였던 셈이다.
(물론 이후에 노르웨이/덴마크 왕국의 지배하에 있던 기간이
1000년정도 되는 것이 함 to the 정)
(지금도 인터넷 자유도 1위, 동성 결혼 허용 및 최초의 동성애자 총리 등
우리가 보기엔 파격에 가까운 정도의 인권 자유도가 보장되는 곳이다.)
길을 따라 조금 걸어들어가면 조그만 하천이 나타난다.
과거 이 곳은 부정을 저지른 여인을 처형했던 장소로
자루에 담은채로 사진에 보이는 물웅덩이에 버렸다고 한다;;;
조그만 개울이 가지고 있는 역사치고는 꽤나 잔혹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을 때 문제가 생겼다.
내 아랫배에서 밖으로 탈출하려는 세력이
폭발적인 기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공원 내에 딱히 화장실도 없고
작은 거면 어디 숨어서라도 해결하겠다만 이건 그럴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의 인포센터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어기적거리며 어째어째 돌아는 왔는데 또다시 난관에 봉착.
아 왜 하필이면 화장실이 유료야!
굳이 현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입장할 수 있는 훌륭한 유료화장실이
차에 지갑을 두고 내린데다가 차 키도 일행 분에게 드려서
땡전 한푼 없는 나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다주고 있었다. -_-
거기다가 오후 6시가 되어서 인포센터 직원들도 퇴근했는지 안보인다;;;
어쩌지어쩌지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침 광명이 찾아왔으니...
어떤 관광객 가족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그냥 바를 넘고 들어간 것이었다.
뒤에 있던 아이들의 어머니가 따로 결재를 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걸 보고는 나도 그냥 에라 모르겠다하고 바를 넘고 돌진했다.
그리고 나는 무사할 수 있었...
그 후로 아내에게 씽크베틀리르는 '응'베리르로 불리기 시작했다. OTZ
여하간 족히 1시간은 넘게 돌아다녀야할 씽크베틀리르를
나때문에 20여분만에 황급히 나와야했지만
아내는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건졌다며 마냥 좋아한다.
어쨋건 오늘의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자.
오늘의 숙소는 레이캬비크에서 북쪽으로 한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보르가르네스(Borgarnes)의 에일스 게스트하우스(Egils Guesthouse).
외장과 실내의 새하얀 벽이 아이슬란드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짐을 풀고난 뒤, 숙소 주변을 산책하러 나왔다.
보르가르네스는 중세 아이슬란드 문학 사가(Saga) 중에 대표작인
에일즈 사가(Egil's Saga)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작품 내에서는 디그라네스(Digranes)로 나온다.)
보르가르네스 반도 끄트머리에 가면 에일즈 사가 주인공 에일(Egil)의 유모
쏘르게르뒤르 브라우크(Þorgerður Brák)에 대한 기념비가 있다.
그리고 이 기념비 맞은편에 조그만 섬이 있는데
그 섬의 이름도 브라우크(Brák)가 들어간 브라우카레이(Brákarey).
여기도 인구 2천명이 안되는 작은 도시다보니
금새 주변을 다 둘러보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브라질 월드컵 개막전을 졸면서 봤...
이제 내일 레이캬비크만 들르면 어느새 여행도 끝이구나.
(저 너머에 보이는 호수는 씽크바틀라바튼(Þingvallavatn).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호수다.)
알고보니 우리는 이미 씽크베틀리르 공원에 들어와 있었다 |
구글맵이 가르쳐주는 대로 차를 몰고 계속해서 가는데
중간에 씽크베틀리르를 가르키는 방향이
우리가 가는 방향과 다른 곳으로 알려주는 도로표지판이 보여서
뭐지 우리 엉뚱한데 가는 건가? 하고 긴장했지만
어쨋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씽크베틀리르 공원이 넓어서
들어오는 입구가 여러 곳이라 생긴 혼란이었다.
어느쪽으로 들어왔어도 상관 없었네.
대표적 관광지라 그런지 넓은 주차장과 안내센터 건물이 있고
무엇보다 공원 입장료를 받는다. -o-
(아이슬란드 자연 관광지 거의 대부분은 입장료가 없다)
길게 이어진 지각 틈새와 습지 |
공원 안으로 들어가보자.
씽크베틀리르는 지질학적으로 유라시아판과 아메리카판이 만나는 곳.
그래서 곳곳이 이렇게 갈라진 계곡으로 형성되어있다.
따라서 유럽과 아메리카를 한걸음에 뛰어 오갈 수 있달까?
(물론 이 계곡은 아이슬란드 전역에 형성되어있다)
유라시아판과 아메리카판의 사이에서는 지금도 땅이 솟아오르고 있어서
아이슬란드는 계속해서 국토가 넓어지고 있기도 하다.
의회가 있었던 지역 |
씽크베틀리르가 중요한 또다른 이유가 있는데
이곳이 세계 최초로 민주적 의회가 있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계곡의 초원지대에 아이슬란드 각지에서 모인이들이 천막을 치고
민주 의회를 시작했던 것이 무려 10세기 초반인 930년 무렵.
무인도였던 아이슬란드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874년이라고 하니
사실상 국가의 초기부터 민주국가였던 셈이다.
(물론 이후에 노르웨이/덴마크 왕국의 지배하에 있던 기간이
1000년정도 되는 것이 함 to the 정)
(지금도 인터넷 자유도 1위, 동성 결혼 허용 및 최초의 동성애자 총리 등
우리가 보기엔 파격에 가까운 정도의 인권 자유도가 보장되는 곳이다.)
길을 따라 조금 걸어들어가면 조그만 하천이 나타난다.
과거 이 곳은 부정을 저지른 여인을 처형했던 장소로
자루에 담은채로 사진에 보이는 물웅덩이에 버렸다고 한다;;;
조그만 개울이 가지고 있는 역사치고는 꽤나 잔혹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을 때 문제가 생겼다.
내 아랫배에서 밖으로 탈출하려는 세력이
폭발적인 기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공원 내에 딱히 화장실도 없고
작은 거면 어디 숨어서라도 해결하겠다만 이건 그럴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의 인포센터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어기적거리며 어째어째 돌아는 왔는데 또다시 난관에 봉착.
아 왜 하필이면 화장실이 유료야!
화장실 입구...(물론 이 사진은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찍었다) |
굳이 현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입장할 수 있는 훌륭한 유료화장실이
차에 지갑을 두고 내린데다가 차 키도 일행 분에게 드려서
땡전 한푼 없는 나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다주고 있었다. -_-
거기다가 오후 6시가 되어서 인포센터 직원들도 퇴근했는지 안보인다;;;
어쩌지어쩌지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침 광명이 찾아왔으니...
어떤 관광객 가족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그냥 바를 넘고 들어간 것이었다.
뒤에 있던 아이들의 어머니가 따로 결재를 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걸 보고는 나도 그냥 에라 모르겠다하고 바를 넘고 돌진했다.
그리고 나는 무사할 수 있었...
다시 바를 뛰어넘고 나오는 나를 찍는 아내님...이러지 맙시다 -_- |
그 후로 아내에게 씽크베틀리르는 '응'베리르로 불리기 시작했다. OTZ
여하간 족히 1시간은 넘게 돌아다녀야할 씽크베틀리르를
나때문에 20여분만에 황급히 나와야했지만
아내는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건졌다며 마냥 좋아한다.
어쨋건 오늘의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자.
오늘의 숙소는 레이캬비크에서 북쪽으로 한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보르가르네스(Borgarnes)의 에일스 게스트하우스(Egils Guesthouse).
외장과 실내의 새하얀 벽이 아이슬란드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짐을 풀고난 뒤, 숙소 주변을 산책하러 나왔다.
바닷가 벤치에서. 지역 출신인 Freyja Bjarnadóttir씨를 기리기 위한 것 같은데 찾아봐도 내용이 아이슬란드어로만 나와서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다 |
회픈도 그랬지만 작은 도시들에서도 잔디축구장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
보르가르네스는 중세 아이슬란드 문학 사가(Saga) 중에 대표작인
에일즈 사가(Egil's Saga)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작품 내에서는 디그라네스(Digranes)로 나온다.)
보르가르네스 반도 끄트머리에 가면 에일즈 사가 주인공 에일(Egil)의 유모
쏘르게르뒤르 브라우크(Þorgerður Brák)에 대한 기념비가 있다.
그리고 이 기념비 맞은편에 조그만 섬이 있는데
그 섬의 이름도 브라우크(Brák)가 들어간 브라우카레이(Brákarey).
위에서 얘기한 기념비인 브라우킨(Brákin) |
여기도 인구 2천명이 안되는 작은 도시다보니
금새 주변을 다 둘러보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브라질 월드컵 개막전을 졸면서 봤...
이제 내일 레이캬비크만 들르면 어느새 여행도 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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