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9일 토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801 (1) : Edvard Munch의 그림들을 찾아 나서다

여행 막바지라 피로가 쌓이기도 했고
가급적 오슬로에서는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우리는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숙소를 나섰다.

오늘 우리 일정의 테마는 뭉크 데이.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는 노르웨이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오늘은 그런 뭉크와 관련된 곳들을 찾아다니는 날이다.
우선 첫 목적지는 뭉크 박물관.
그런데, 미술관에 도착하고보니 11시 40분. 너무 느긋하게 움직였나?
얼른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감상 시간을 가져보자.







뭉크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마돈나'

그런데 뭉크의 작품들을 보다보면
스타일만 다른 거의 유사한 그림들이 있거나
익히 알고 있던 그림도 뭔가 미묘하게 다르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는 같은 이름의 작품이 여러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뭉크는 자기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팔린 작품을 다시 그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가장 유명한 '절규'도 네가지 버전이 있다.)

그런데...생각보다 뭉크 박물관의 작품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가 미술품 감상을 오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1시간이 채 안되서 끝났네.
그리고 뭣보다 '절규'가 없어;;;
(분명히 절규의 네가지 버전중 두 점이 여기 있다고 했는데...)
다양한 스타일의 뭉크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그래도 뭔가 앙금 빠진 단팥빵같은 이 허전함이란...
뭐 우리가 전시 타이밍 운이 없었던 것이라 위로해본다.

박물관을 나선 뒤 오늘의 커피를 위해 카페를 찾았다.
이전에 말했듯 노르웨이는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2위인 나라.
그런만큼 오슬로 시내 거리에 널리고 널린 것이 카페다.

오슬로 시내에는 정말 카페가 많다

그러나 그 많고 많은 오슬로 내의 카페들 중에서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성지처럼 여기는 곳이 있으니
2004년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을 비롯해서
수많은 대회에 입상한 바리스타의 카페다.
이렇게 유명한 바리스타의 카페면 사람이 넘쳐나지 않을까?
그런데 웬걸, 앉을 좌석은 없었지만 기다림 없이 주문은 바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잠시후 자리가 나서 아예 앉아서 마시기로 했다.)

유명세에 비하면 아담한 크기의 카페

메뉴도 단출한 편

따뜻한 카푸치노와 차가운 아니세타(Anisetta) 한 잔씩.
아니세타는 아니스 시럽을 넣은 라떼라고 한다.

한모금 입안에 들어온 커피는 그윽한 향이 가득했고
우유와 함께 어우러진 맛 또한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심지어 평소에 라떼류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우리인데도 말이다.
베르겐의 카페미쇼넨(Kaffemisjonen)에서 느꼈던
2% 부족한 아쉬움 따위는 일절 남지 않는 훌륭한 풍미.
오슬로에 들르는, 커피를 좋아하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픈 맛.

카페인으로 기운을 회복하고 다시 다음 행선지를 향했다.
우리가 들를 다음 장소는 국립 미술관.

2020년 11월 28일 토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1 (3) : 노르웨이의 칵테일 이름은 정직하다

30분 정도의 바이킹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애시당초 뷔그되위(Bygdøy)로 온 시간이 늦어서 다른 박물관을 가기는 어렵기에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보다시피 비그되위의 이정표에는 박물관이 잔뜩이다

선착장에서 페리를 기다리며

주인과 같이 퇴근하는 걸까? 그런데 꼬리가 말렸네 ㅋ

페리에서 바라본 아케르스후스(Akershus) 요새

페리를 타고 오슬로 시청앞으로 돌아왔다.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먹을거리 장이나 좀 보고 가야겠다.

우리가 노르웨이 온 지도 2주가 넘었건만
대도시(물론 우리나라 대도시들에 비하면 작지만)의 중심가라 그런지
슈퍼마켓의 물품들이 이전에 들렀던 곳들에 비해 훨씬 다양해서
마치 갓 입국한 여행객 마냥 슈퍼마켓 내부를 구경다녔다.
특히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군침이 당긴다.
뭣보다 이 나라 물가에 비하면 고기 가격은 꽤나 저렴한 편.
뭐 결국 오늘 저녁은 노르웨이 연어와 야채 샐러드로 결정되었다만.
얼른 숙소로 돌아가 밥 해먹자. 배고프다.



신선한 고래 스테이크(Fersk Hvalbiff)...
노르웨이는 국제 포경 협정을 위반하는 대표적 나라중 하나다.
 
숙소에 돌아와서 해먹은 저녁식사

식사 후 비내리고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다
이대로 밤을 보내기는 아쉬워서 다시 숙소를 나섰다.
숙소 주인에게서 추천받아둔 바가 있기에 거기로 가볼 예정.

다행히 비는 잦아들어 우산을 안써도 될만한 정도.
조용한데다가 가로등도 적어 어두운 길을 10분간 걸어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쿠아쿠 티키 바(Aku-aku Tiki bar).
그런데 우리가 걸어온 그 적막감과는 너무나도 대비되게
바 안에는 앉을 곳 하나 없이 사람들로 가득해서 시끌벅적하다.
우리는 너무 시끄러운 건 좀 꺼려지기도하고
마침 비도 거의 그쳤으니 길가 좌석에 앉아볼까?
(차양이 있어 비를 막아주기도 했다.)

잠시후 우리가 주문한 칵테일들이 나왔는데
아내의 칠리 펀치(Chili punch)에 너무나 큼직한 홍고추가 꽂혀있다.
칠리라고 해서 화끈한 느낌같은 게 있을 거라 생각했지
이렇게 정직하게 큼직한 고추가 같이 나올 줄이야. ㅋㅋㅋ
아내는 지난번 베르겐에서의 칠리 마티니에 이어
노르웨이의 바는 칠리 시리즈로 기억될 듯.

왼쪽이 크고 아름다운 홍고추 펀치

시간이 지나 11시가 되자 직원이 나와서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노르웨이에서는 11시 이후 노천 좌석은 철수하는게 규칙이다.
마실 것도 다 마셨고 시간도 늦었으니 숙소로 돌아가볼까나?

돌아가는 길에 부동산 가게가 있어서
잠시 나와있는 매물들을 살펴봤다.
물가때문에 집 가격도 어마어마할 줄 알았건만
3룸이 우리 돈 6억원 정도니까 물가대비 집값은 오히려 우리보다 낮다.
이렇게 또다시 느끼는 서울의 비싼 집값.


내일 뭉크 데이를 위해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Have a good night~

2020년 9월 27일 일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1 (2) : 만능 패스, 오슬로 패스

트램에서 내려 아케르스후스(Akershus) 요새로 걸어가던 중
엥게브렛(Engebret) 까페가 있어서 잠시 멈춰섰다.


엥게브렛 카페는 1857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현재 오슬로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며
노르웨이의 첫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레스토랑이 있는 건물은 1760년에 지어진 것으로
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헨릭 입센, 에드바르 그리그, 에드바르 뭉크와 같은
유명한 노르웨이 예술가들의 정규 좌석이 있던 곳이라니
(가게 앞 동상도 연극 배우 요하네스 브룬(Johannes Brun)의 동상)
혹시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들러보기로 하고 우선은 요새로 가자.

엥게브렛 카페에서 10분정도 걸려서 요새에 도착했다.
13세기말 오슬로는 자주 스웨덴의 침략을 받았고
이를 막기 위해 오슬로 항구 옆에 지은 요새가 아케르후스 요새다.
(그리고 당시 국왕 호콘 5세는 수도 또한 베르겐에서 오슬로로 옮긴다.)
수도로서의 오슬로의 700여년 역사를 함께하는 건축물이며
한 번도 전투로 점령당한 적 없는 의미 깊은 유적지이지만
(나치에게 점령당한 적은 있는데 그건 전투 없이 항복한 거라...)
사실 우리에겐 그저 오슬로 항구 경치를 보기에 좋은 곳.


천천히 걸어다니며 구경중에 오후 4시가 됐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지나치던 자리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시작했다.
소규모 인원에 음악 소리도 없어 좀 썰렁하긴 하네.
정문에서는 좀 더 규모있게 하려나?
그러고보니 여자 근위병들이 꽤 여럿 있네.


들어갈 때와 다르게 항구쪽으로 요새를 빠져나왔다.
항구 뒤편은 오슬로 시청. 매년 노벨 평화상 시상이 있는 곳이다.


기왕 항구로 나온 거 배 타고 뷔그되위(Bygdøy)로 가볼까?
뷔그되위는 다양한 박물관들이 모여있는 지역이라서
오슬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다만 오후 4시가 넘었으니 박물관들 문 닫기 전에 가려면 서둘러야겠다.
페리 티켓은 오슬로 패스로 OK.


승무원의 잔돈 지갑(?)

둥그스름한 지붕의 아스트룹 피언리(Astrup Fearnley) 현대 미술관

페리는 5분여만에 우리를 뷔그되위에 데려다주었다.
많은 박물관들이 있지만 북유럽이니 역시 바이킹 박물관으로 가자.
선착장에서 바이킹 박물관까지는 걸어서 10분.


입장료는 오슬로 패스로 통과~
바이킹 후예의 나라이니 바이킹 박물관 규모는 크지 않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그나마도 건물 내로 들어서보니
공간의 상당부분은 거대한 배가 차지하고 있다.



커다란 배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사실 내가 바이킹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는
투박하고 우락부락한 정복자의 모습이었는데
의외로 많은 유물들이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을 자랑했다.




역시나 북유럽이니 썰매도 유물

2020년 9월 4일 금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1 (1) : Oslo, 호랑이 도시

세시간의 비행 후 오슬로(Oslo) 공항에는 자정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오슬로 중앙역까지 와서 숙소 쪽 가는 트램을 기다리는데
4일만에 만난 어둠은 낯설었고 거기다 왠지 모를 두려움마져 안겨주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게 도시여서 느끼는 두려움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인생을 대도시에서 살았는데
불과 며칠의 백야 오지 생활이 도시 밤거리를 무서워하게 만들다니.

밤이라서 오슬로 패스 티켓을 못샀는데
하필 현금도 큰 단위의 돈 밖에 없다.
혹시나 트램에서 잔돈으로 바꿔줄까 싶었지만 그것도 안되는 상황.
우리가 어쩌지 하고 있으니
기사 아저씨가 다음에 탈 때 두 배로 내라며 그냥 태워준다.
가...감사합니다. ㅠㅠ

트램과 도보를 포함해 30분정도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
이번 숙소는 4층인데...역시나 엘레베이터가 없다. OTZ
안그래도 힘든데 오밤중에 다른 주민들 깰까 조심도 해야하고...
짐가방 두 개를 4층까지 옮기고 나니 죽을맛이다.
밤도 늦었으니 대충 정리한 뒤 얼른 씻고 잠이나 자자.

...

늦게 잔 만큼이나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식사를 했다.
정말 소형 밥솥은 이번 여행만으로도 제 값 이상을 하는 것 같다.
이거 덕분에 몇 끼를 해결하고 그 덕에 얼마를 아꼈는지 모르겠다

이제 오슬로 시내 구경을 다녀보자.
우선 트램을 타고 오슬로 중앙역으로 나가자.
트램 한 번 타는데 1인당 5천원 가까운(70 kr) 돈이 든다.
거기다 밤에 못냈던 거까지 두 배로 내니 이건 뭐......
얼른 관광안내소 가서 오슬로 패스부터 사야지 교통비로 거덜나겠다.
...
그런데 3일짜리 오슬로 패스 하나 가격이 745 kr. (약 104000 원)
아...그냥 한방에 거덜나냐 천천히 거덜나냐 차이였구나. OTZ

이거 한 장이 10만원......

돈 10만원 들여서 산 티켓치고는 되게 부실하다.
그저 종이일 뿐인데다가 심지어 만료일도 내가 직접 기입하는 거고
교통수단을 탈 때에도 이걸 기사에게 보여주는 게 전부다.
뭐 시민사회의 상호 신뢰가 충분히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거겠지만
악용하는 관광객들도 은근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역 앞 광장으로 나오면 오슬로의 상징인 커다란 호랑이 동상이 보인다.
19세기 시인 비외른스티에르네 비외른손(Bjørnstjerne Bjørnson)의 시에서
위험한 도시를 호랑이로 묘사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후로 오슬로의 별칭이 호랑이 도시가 되었다나?
사실 호랑이는 유럽과 아무 상관 없는 동물이라 약간은 황당한 사연.


우선 중앙역에서 노르웨이 왕궁까지의 오슬로 중심가를 걸어보자.
오슬로의 인구는 70만이라 이 숫자로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들렀던 다른 노르웨이 도시들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현대적인 도시라는게 건물들만으로도 한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중심가를 걸으니 오가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상점가 골목들에는 커다란 테디베어 풍선들이 공중에 매달려있다.
풍선에 적힌 Hug life란 문구로 검색을 해보니
EGER 쇼핑몰 주관의 '즐거움, 온기, 관용의 전파' 주제로 한 전시인 듯 했다.


상점가의 끝에 있는 국회의사당에서부터 왕궁까지는 공원으로 되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이 엄중한 경비로 둘러싸여
실생활권과는 별개의 세상처럼 느껴지는게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 몇 번 본 모습이지만)
왕궁과 국회의사당이 혼잡한 시내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정면 멀찌감치 보이는 건물이 노르웨이 왕궁이다.
왼쪽은 국회의사당

이미 트론헤임에서도 경험했지만
위도와 상관없이 맑은 날씨의 오슬로도 뜨거운 기온을 자랑했다.
공원 옆 오펜트(Åpent) 베이커리에서 차가운 커피로 더위를 달래보자.

왕궁의 정원은 누구나 아무런 제재없이 들어갈 수 있고
왕궁 또한 여름철에는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한다.
다만 내부 관람을 위해서는 후문에서 티켓을 끊어야하고
정해진 시간에만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들어가볼 수 있다.
우선 오늘은 왕궁에 가볼 생각이 없으니 공원을 질러가자.

천천히 구경하며 왕궁을 가로지른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숙소 주인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인 FYR Bistronomi로 향했다.




립과 감자튀김 그리고 생굴을 시켰는데 515 kr(약 72000원).
먹는 양 적은 우리니까 이 정도지
보통 다른 사람들이면 10만원 치는 시켜야 겨우 부족하지는 않을 정도다.
2주 넘게 경험했으면서도 여전히 절레절레하게 만드는 물가지만
그래도 오늘 들른 레스토랑의 요리는 엄지 척.
특히나 굴은 라임향 가득한 새콤한 소스가 비린내는 싹 잡아주면서도
굴 특유의 바닷내와 어우러져서 우리 둘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마리당 만원꼴의 가격만 아니면 더 시켜먹고 싶은 마음.

식사를 했으니 다시 관광을 해야지.
트램을 타고 아케르후스(Akershus) 요새쪽으로 가보자.

오슬로 시내는 여느 유럽 올드 시티들 처럼 길이 좁은데다가
트램이 많이 다녀 차를 이용하기가 편치 않다

2020년 8월 28일 금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0 (3) : 밤을 잊은 곳에서 밤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스발바르 도착하던 날 여러차례 착륙시도를 했던 얘기를 꺼내자
가이드는 그 때 밑에서 제발 좀 착륙하라고 애원하고 있었단다.
가이드만 하는게 아니라 공항 택시 기사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
더군다나 그 때가 새벽 4시가 넘은 시각이었으니
얼른 마치고 집에가서 자고 싶었을 그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 말을 재현할 때 그의 제스쳐가 어찌나 절실하던지... ㅋ)

아 그리고 오늘 너무나도 깨끗하게 갠 날씨 얘기를 하니까
이런 날이 일년에 몇일 안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제 떠나려니 겨우 맑아지냐고 불평을 했지만
알고보니 이 곳에서 이런 날씨를 보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던 거다.
이런 때 아내와 둘이서 하는 얘기로
우리 반려견이었던 푸메가 하늘에서 구름 쫓아냈나보다 하는데
뭐가 되었건 고마워하는 맘으로 오늘 날씨를 대해야겠다.

우리가 다닌 투어가 매우 심심해 보이긴 한데
배를 타고 근교의 폐광마을인 피라미덴(Pyramiden)을 들르거나
바다코끼리나 북극곰같은 야생동물을 찾아가는 것들도 있으니
스발바르 투어가 죄다 우리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도 예약이 다 차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다.
뭐 그래도 그 덕에 재미난 콜롬비아인 가이드를 만났다만. ㅋ

다시 차를 타고 마을 중심가로 돌아왔다.
저녁에 오슬로로 갈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점심 먹을 가게도 찾을 겸 마을을 어슬렁거려 본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선택은 이틀 전에 들렀던 프루에네(Fruene).
저번에는 후식만 먹고 갔지만 이번엔 식사를 하자.

치킨 커리 샌드위치와 멕시칸 스프

이틀 전에 커피와 케익을 먹으면서도 괜찮다 싶었는데
오늘의 식사용 음식들도 훌륭하네.
식당이라기보다는 카페에 가까운 가게지만
어쨋건 훌륭한 음식들로 배를 채울 수 있었으니 무슨 상관인가.
뭐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기왕 스발바르까지 왔는데
순록고기 요리가 있는 레스토랑은 가볼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점심 식사도 마쳤지만 오늘 밤 비행기 타기 전까지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우선 (이미 체크아웃한) 숙소로 간 다음 로비에서 쉬자.
로비 벤치에 앉아서 뒹굴거리며 졸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오슬로 정보도 찾아보고
아내는 스발바르 브루어리 맥주도 마지막으로 즐겼다.

한참동안 숙소 로비에서 시간을 보낸 후
아직 비행기 시간은 이르긴 해도 공항가는 버스를 탔다.
이미 알다시피 공항까지는 차로 15분.
복잡할 것도 없는 공항이니 체크인까지도 금방이다.
그러다보니 게이트 앞에서 다시 무료한 시간을 한참 보내야겠다.
정말 여태껏 여행중 언제 이래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스발바르에서 보낸 3일 내내 무료하고도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 무료함이 싫지 않은 것은 스발바르이기 때문 아닐까?

저녁식사도 공항내 매점에서 간단하게 해결하며 기다린 끝에
드디어 오슬로(Oslo)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시각이 되었다.
무료한 기다림이 끝나서인지 장난기가 발동해서 목베개로 장난을 좀 쳐본다.

아내의 반항이 약간 있었지만...


이제 다시 밤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주었던 백야의 스발바르여 안녕.

2020년 8월 23일 일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0 (2) : 평화로운 야생의 땅, Svalbard

차는 이번엔 마을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향했다.
10분간 달려 도착한 곳에는 안내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공항에서 나올 때도 봤었던 북극곰 주의 안내판.
그 밑에 적혀 있는 "Gjelde hele Svalbard"의 의미는
스발바르 전역에 적용된다는 뜻이다.


이 곳은 롱위에아르뷔엔 마을의 경계다.
지금 우리에게는 저 너머로는 조용한 자연 풍경만이 펼쳐져 있지만
스발바르는 사람(2천여명)보다 북극곰(3천여마리)이 더 많은 곳.
차에서 내리기 전 가이드는 혹시나 북극곰이 나타나면
곧바로 차에 탑승해서 피하라고 알려줬다.
이게 드문 일이 아니라 실제로 가끔씩 나타나기 때문에
마을을 벗어날 때는 반드시 총이나 차량을 갖고 있어야 한단다.
또 북극곰들이 대체로 마을로는 잘 오지 않지만
가끔은 먹을 것을 찾으러 마을로도 내려온단다.
그야말로 야생과 함께하는 스발바르다.


다들 안내판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이드는 진흙뻘 쪽으로 내려가더니 우리를 불렀다.
그가 부르는 쪽으로 가보니 뻘밭에 떡하니 찍힌 발자국.
북극곰 발자국이다!
가이드 말로는 며칠전에 나타난 녀석의 발자국이란다.

우리의 콜롬비안 가이드
 
선명한 북극곰 발자국

가이드 말로는 며칠 전에 이 북극곰이 나타났을 때
마침 투어를 하던 다른 가이드와 여행객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쫓아내기 위해 총까지 쐈다고 한다.
다만 총은 어디까지나 위협용이지 북극곰을 쏘면 안된단다.
북극곰은 멸종위기 동물이기때문에
만약 북극곰을 맞추게 되면 이에 대한 정당성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며칠전 출현했던 북극곰에게 총을 쏜 사건도
(가까이서 보여주겠다는) 가이드의 과욕으로 곰의 접근을 허용했던 탓이라
(곰을 맞춘 건 아니지만) 총을 쏜 가이드가 많이 비난받았다고 한다.

다시 차에 탑승한 우리는 이번엔 마을을 벗어나 달렸다.
마을을 벗어난지 얼마 안됐는데도 금새 야생 동물들이 보인다.

순록

기러기는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사실 야생 동물중에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북극여우지만
운 좋으면 마을 근처에서 만나기도 한다지만
이렇게 차를 타고 가면서 만나기는 아마도 어렵겠지.

마을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달리던 차는
어느새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 언덕의 끝에서 커다란 안테나 두 개가 나타났다.


이는 태양으로 인한 지구 전자기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레이더.
EISCAT이라는 국제기구에서 운영하는 것인데
극지방은 지구 자기권이 궤도가 낮아서 가능한 조사다.

공식적인 투어는 끝나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던 차는
마을로 돌아가던 중 방향을 틀어 투어 회사 건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썰매개 축사.
겨울에는 얘네들이 열일하겠구나.


대부분의 개들은 철망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몇마리는 나와 있었다.
그 중 린네아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한껏 애교를 부렸다

가이드는 우리를 따뜻한 모닥불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다들 둘러앉아 커피와 과자를 즐기며
오늘 투어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우리에게 감상을 물어보기에 스발바르가 strange하다고 했더니
가이드가 뭐가 가장 이상했냐고 되물었다.

"여기서 콜롬비아인 가이드 만난 거요."

지체 없는 내 대답에 모두들 웃음이 빵 터졌다.
가이드도 웃더니만 어떻게 여기서 일하게 되었는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후셋 레스토랑에 인턴으로 들어갔다가
인턴기간이 끝나고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술을 먹었는데
꽐라가 된 상태에서 아까 들렀던 레스토랑 취업계약서에 사인하고
그 이후로 계속 스발바르에서 이일저일하며 살고 있다나...
뭔가 MSG가 많이 들어간 스토리로 보이지만 그러려니 하자.
여하간 가이드는 이 얘기를 시작으로 이 곳만의 특이한 점들을 설명했다.

스발바르는 노르웨이 땅이긴 하지만
스발바르 조약의 영향을 받는 특수 지역이라서
(스발바르 전체가 면세지역인 이유도 이 조약 때문이다.)
고용주의 동의만 있으면 비자 없이도 취업할 수 있는 곳이다.
가이드가 직종을 바꿔가면서 몇년간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상당수의 태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대신 몇년을 일하든 영주권을 얻을 수는 없으며
또한 직업을 잃으면 반드시 스발바르를 떠나야한다.

또한 스발바르는 사람이 태어날 수도, 죽어서 묻힐 수도 없는 곳이다.
우선 제대로 된 병원이 없어서 출산하려면 비행기로 트롬쇠에 가야하고
같은 이유로 위중한 환자들도 이 곳들 떠나야한다.
혹여나 사고로 죽는다해도 대부분이 영구 동토라서 시체가 썩지도 않고
심지어 묻어둔 시체가 겨우내 빙하에 밀려 땅 위로 올라오기도 하기에
시신은 그 사람의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을에서 보이던 대형 파이프의 정체를 물어봤는데
지역 난방 온수파이프라고 한다.
왜 파이프가 굳이 밖으로 나와있나 했더니
어짜피 땅에 묻어도 자주 동파하는데
수리하려면 밖에 드러나 있는 것이 낫다는 게 이유였다.

아 그리고 워낙 사람 수가 적은 지역이라 사건사고도 드문데
최근 몇년간 가장 큰 사건은 2016년에 한 독일 훌리건이
(그리고 이로 인해 스발바르에서 영구추방 당했다고 한다)

참으로 평화로운 스발바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