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8일 금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0 (3) : 밤을 잊은 곳에서 밤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스발바르 도착하던 날 여러차례 착륙시도를 했던 얘기를 꺼내자
가이드는 그 때 밑에서 제발 좀 착륙하라고 애원하고 있었단다.
가이드만 하는게 아니라 공항 택시 기사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
더군다나 그 때가 새벽 4시가 넘은 시각이었으니
얼른 마치고 집에가서 자고 싶었을 그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 말을 재현할 때 그의 제스쳐가 어찌나 절실하던지... ㅋ)

아 그리고 오늘 너무나도 깨끗하게 갠 날씨 얘기를 하니까
이런 날이 일년에 몇일 안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제 떠나려니 겨우 맑아지냐고 불평을 했지만
알고보니 이 곳에서 이런 날씨를 보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던 거다.
이런 때 아내와 둘이서 하는 얘기로
우리 반려견이었던 푸메가 하늘에서 구름 쫓아냈나보다 하는데
뭐가 되었건 고마워하는 맘으로 오늘 날씨를 대해야겠다.

우리가 다닌 투어가 매우 심심해 보이긴 한데
배를 타고 근교의 폐광마을인 피라미덴(Pyramiden)을 들르거나
바다코끼리나 북극곰같은 야생동물을 찾아가는 것들도 있으니
스발바르 투어가 죄다 우리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도 예약이 다 차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다.
뭐 그래도 그 덕에 재미난 콜롬비아인 가이드를 만났다만. ㅋ

다시 차를 타고 마을 중심가로 돌아왔다.
저녁에 오슬로로 갈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점심 먹을 가게도 찾을 겸 마을을 어슬렁거려 본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선택은 이틀 전에 들렀던 프루에네(Fruene).
저번에는 후식만 먹고 갔지만 이번엔 식사를 하자.

치킨 커리 샌드위치와 멕시칸 스프

이틀 전에 커피와 케익을 먹으면서도 괜찮다 싶었는데
오늘의 식사용 음식들도 훌륭하네.
식당이라기보다는 카페에 가까운 가게지만
어쨋건 훌륭한 음식들로 배를 채울 수 있었으니 무슨 상관인가.
뭐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기왕 스발바르까지 왔는데
순록고기 요리가 있는 레스토랑은 가볼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점심 식사도 마쳤지만 오늘 밤 비행기 타기 전까지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우선 (이미 체크아웃한) 숙소로 간 다음 로비에서 쉬자.
로비 벤치에 앉아서 뒹굴거리며 졸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오슬로 정보도 찾아보고
아내는 스발바르 브루어리 맥주도 마지막으로 즐겼다.

한참동안 숙소 로비에서 시간을 보낸 후
아직 비행기 시간은 이르긴 해도 공항가는 버스를 탔다.
이미 알다시피 공항까지는 차로 15분.
복잡할 것도 없는 공항이니 체크인까지도 금방이다.
그러다보니 게이트 앞에서 다시 무료한 시간을 한참 보내야겠다.
정말 여태껏 여행중 언제 이래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스발바르에서 보낸 3일 내내 무료하고도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 무료함이 싫지 않은 것은 스발바르이기 때문 아닐까?

저녁식사도 공항내 매점에서 간단하게 해결하며 기다린 끝에
드디어 오슬로(Oslo)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시각이 되었다.
무료한 기다림이 끝나서인지 장난기가 발동해서 목베개로 장난을 좀 쳐본다.

아내의 반항이 약간 있었지만...


이제 다시 밤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주었던 백야의 스발바르여 안녕.

2020년 8월 23일 일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0 (2) : 평화로운 야생의 땅, Svalbard

차는 이번엔 마을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향했다.
10분간 달려 도착한 곳에는 안내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공항에서 나올 때도 봤었던 북극곰 주의 안내판.
그 밑에 적혀 있는 "Gjelde hele Svalbard"의 의미는
스발바르 전역에 적용된다는 뜻이다.


이 곳은 롱위에아르뷔엔 마을의 경계다.
지금 우리에게는 저 너머로는 조용한 자연 풍경만이 펼쳐져 있지만
스발바르는 사람(2천여명)보다 북극곰(3천여마리)이 더 많은 곳.
차에서 내리기 전 가이드는 혹시나 북극곰이 나타나면
곧바로 차에 탑승해서 피하라고 알려줬다.
이게 드문 일이 아니라 실제로 가끔씩 나타나기 때문에
마을을 벗어날 때는 반드시 총이나 차량을 갖고 있어야 한단다.
또 북극곰들이 대체로 마을로는 잘 오지 않지만
가끔은 먹을 것을 찾으러 마을로도 내려온단다.
그야말로 야생과 함께하는 스발바르다.


다들 안내판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이드는 진흙뻘 쪽으로 내려가더니 우리를 불렀다.
그가 부르는 쪽으로 가보니 뻘밭에 떡하니 찍힌 발자국.
북극곰 발자국이다!
가이드 말로는 며칠전에 나타난 녀석의 발자국이란다.

우리의 콜롬비안 가이드
 
선명한 북극곰 발자국

가이드 말로는 며칠 전에 이 북극곰이 나타났을 때
마침 투어를 하던 다른 가이드와 여행객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쫓아내기 위해 총까지 쐈다고 한다.
다만 총은 어디까지나 위협용이지 북극곰을 쏘면 안된단다.
북극곰은 멸종위기 동물이기때문에
만약 북극곰을 맞추게 되면 이에 대한 정당성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며칠전 출현했던 북극곰에게 총을 쏜 사건도
(가까이서 보여주겠다는) 가이드의 과욕으로 곰의 접근을 허용했던 탓이라
(곰을 맞춘 건 아니지만) 총을 쏜 가이드가 많이 비난받았다고 한다.

다시 차에 탑승한 우리는 이번엔 마을을 벗어나 달렸다.
마을을 벗어난지 얼마 안됐는데도 금새 야생 동물들이 보인다.

순록

기러기는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사실 야생 동물중에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북극여우지만
운 좋으면 마을 근처에서 만나기도 한다지만
이렇게 차를 타고 가면서 만나기는 아마도 어렵겠지.

마을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달리던 차는
어느새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 언덕의 끝에서 커다란 안테나 두 개가 나타났다.


이는 태양으로 인한 지구 전자기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레이더.
EISCAT이라는 국제기구에서 운영하는 것인데
극지방은 지구 자기권이 궤도가 낮아서 가능한 조사다.

공식적인 투어는 끝나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던 차는
마을로 돌아가던 중 방향을 틀어 투어 회사 건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썰매개 축사.
겨울에는 얘네들이 열일하겠구나.


대부분의 개들은 철망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몇마리는 나와 있었다.
그 중 린네아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한껏 애교를 부렸다

가이드는 우리를 따뜻한 모닥불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다들 둘러앉아 커피와 과자를 즐기며
오늘 투어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우리에게 감상을 물어보기에 스발바르가 strange하다고 했더니
가이드가 뭐가 가장 이상했냐고 되물었다.

"여기서 콜롬비아인 가이드 만난 거요."

지체 없는 내 대답에 모두들 웃음이 빵 터졌다.
가이드도 웃더니만 어떻게 여기서 일하게 되었는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후셋 레스토랑에 인턴으로 들어갔다가
인턴기간이 끝나고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술을 먹었는데
꽐라가 된 상태에서 아까 들렀던 레스토랑 취업계약서에 사인하고
그 이후로 계속 스발바르에서 이일저일하며 살고 있다나...
뭔가 MSG가 많이 들어간 스토리로 보이지만 그러려니 하자.
여하간 가이드는 이 얘기를 시작으로 이 곳만의 특이한 점들을 설명했다.

스발바르는 노르웨이 땅이긴 하지만
스발바르 조약의 영향을 받는 특수 지역이라서
(스발바르 전체가 면세지역인 이유도 이 조약 때문이다.)
고용주의 동의만 있으면 비자 없이도 취업할 수 있는 곳이다.
가이드가 직종을 바꿔가면서 몇년간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상당수의 태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대신 몇년을 일하든 영주권을 얻을 수는 없으며
또한 직업을 잃으면 반드시 스발바르를 떠나야한다.

또한 스발바르는 사람이 태어날 수도, 죽어서 묻힐 수도 없는 곳이다.
우선 제대로 된 병원이 없어서 출산하려면 비행기로 트롬쇠에 가야하고
같은 이유로 위중한 환자들도 이 곳들 떠나야한다.
혹여나 사고로 죽는다해도 대부분이 영구 동토라서 시체가 썩지도 않고
심지어 묻어둔 시체가 겨우내 빙하에 밀려 땅 위로 올라오기도 하기에
시신은 그 사람의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을에서 보이던 대형 파이프의 정체를 물어봤는데
지역 난방 온수파이프라고 한다.
왜 파이프가 굳이 밖으로 나와있나 했더니
어짜피 땅에 묻어도 자주 동파하는데
수리하려면 밖에 드러나 있는 것이 낫다는 게 이유였다.

아 그리고 워낙 사람 수가 적은 지역이라 사건사고도 드문데
최근 몇년간 가장 큰 사건은 2016년에 한 독일 훌리건이
(그리고 이로 인해 스발바르에서 영구추방 당했다고 한다)

참으로 평화로운 스발바르다.

2020년 8월 8일 토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0 (1) : 말로 끝나는 Longyearbyen 투어

스발바르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다.
사실 시간이 아침이니까 아침이라고 하는 거지
24시간 밝으니 아침이라고 부르는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쨋건 아침식사를 하러 나왔는데 너무나도 화창한 날씨다.
이틀 내내 잔뜩 흐리다가 떠나는 날에야 이렇게 화창하다니.
그래도 한편으로는 한나절이라도 맑든 걸 보는게 어디냐 싶다.

구름 밖에 없던 하늘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바뀌었다

여태 언급하지 않았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를 노르웨이에서 만나 놀란 게 있는데
여기도 집안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었다.
서양은 어디든 집단에도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역시나 세상은 많이 접해봐야 그만큼 알 수 있는 것 같다.
(아내 말로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그랬다는데 기억이 잘 안난다;;;)

노르웨이 집 현관에는 신발 벗는 곳이 있다

오늘은 오전에 롱위에아르뷔엔 투어를 한다.
사실 구경할 거리가 많지 않은 곳이지만
그래도 왔으니 투어 한 번 쯤은 돌아봐야지.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투어 차량이 왔다.
그런데 운전자 겸 가이드가 백인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 소개를 하는데 콜롬비아 사람이란다.
노르웨이 땅인 스발바르를 안내하는 콜롬비아 사람이라니.
당혹스럽지만 이 또한 스발바르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우리를 포함해) 6명의 손님을 태우고 밴 차량이 출발했다.
그리고 도착한 첫 방문지는 후셋(Huset) 레스토랑...읭?
이 곳이 단순한 레스토랑은 아니고 컨퍼런스 장소로도 쓰이며
과거에는 호텔과 우체국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가이드 말로는 자기가 예전에 여기서 일했었는데
여기 와인 셀러에 좋은 와인이 그렇게나 많다고...
그리고 이 모든 설명을 레스토랑 앞에서 하차도 안하고 끝냈다.
역시나 구경거리가 많지 않은 롱위에아르뷔엔.
(솔직히 왜 여기를 들렀는지는 당췌 의문이다;;;)

다음 목적지는 세계 최북단에 있는 교회이자
스발바르 유일의 교회인 스발바르 교회.

소박한 교회 내부

사실 여기 또한 세계 최북단 교회라는 상징성 외에는
특별한 것 없이 지극히 소박한 시골교회일 뿐이다.
(구경할 게 없다는 얘기다. ㅋㅋㅋ)
그나마 벽난로 위의 곡괭이와 슬레지 해머가
이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왠지 구소련 국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역시나 길지 않았던 스발바르 교회 구경 후
이번 구경 거리는 석탄 운송용 케이블 카트 시설.
(어째 우리가 산책하던 장소를 벗어나질 않네. -_-;;;)
롱위에아르뷔엔의 탄광들은 대부분 채굴이 중단됐기에
이 케이블 카트들도 사실상 버려진 상태라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버려진 목조 구조물들이
평범한 시골마을을 기묘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영상 10도 전후의 기온이지만 저 멀리 거대한 빙하가 보인다

다시 차에 올라타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스발바르 공항 옆 오르막길을 달려 도착한 이번 목적지는
세계적 대재앙이 발생했을 때의 인류 생존을 위해서
식물 종자들을 보관하고 있는 국제 종자 저장고.
(이러한 종자 저장고는 세계에 단 두 곳이 있는데
나머지 하나는 우리나라 경북 봉화군에 있다.)
천재지변이나 핵전쟁에도 무사하도록
저장고 자체는 땅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고
우리가 땅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입구 뿐.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종자 저장고가 한창 공사중이었는데
얼마전에 누수 현상이 발생해서 그렇다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종자의 반입만 가능하고
(큰 위기가 없다면) 반출은 안되도록 되어있는데
딱 한 번, 시리아 내전동안 유실된 종자를 반출하기 위해서
밖으로 가지고 나간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인류에게 중요한 장소이긴 하지만
우리가 굳이 공사판 현장에서 오래 있을 필요는 없겠다.
사실 공사가 아니라도 일반인 출입은 불가한 시설이며
그냥 여기에 이런게 있구나 하고 보고 가는게 전부이긴 하다.
그럼 또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종자 저장고 아래는 스발바르 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