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시외버스들은 버스표에 좌석번호가 적혀있지만
실상은 좌석번호와 상관없이 자기 앉고 싶은데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도 43, 44번의 좌석번호가 적힌 표를 받았지만
아내가 좀 더 앞쪽의 좌석에 앉고 싶어해서 (그리고 마침 비어있어서)
번호표를 무시하고 다른 좌석에 앉았다.
그러나 이 선택이 엄청 난감한 상황을 만들었다.
앉고보니 아내가 앉은 창가쪽은 에어컨 물이 떨어져서 축축한데다가
이게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었는지 퀴퀴한 곰팡내까지 심했다;;;;;
당황해하는 동안 다른 자리들은 이미 나중에 탄 사람들이 점유.
아내 옷은 이미 젖고 냄새까지 배었다.
내 옷이라도 안망치겠다고 아내는 한동안 이 난감한 자리에 앉아있었다.
얼마나 갔을까... 정차한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꽤 내렸다.
(아마 쉬베닉(Šibenik)이었을 거다. 기억은 안나지만)
(이 때만은 직행이 없는 크로아티아의 버스 시스템에 감사했다 -_-)
우리는 잽싸게 뒤쪽에 빈 자리들을 살펴봤는데
당황스럽게도 다른 자리들도 창가 좌석이 비슷한 상태;;;;;
그래도 다행히 한 곳은 멀쩡한 상태여서 옮겨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앉고 보니 좌석번호가 처음에 배정받았던 43, 44 -_-;
처음 탈때도 이 자리 비어있었는데 괜히 딴 곳에 갔다가 아내 옷만 망쳤다.
(우리가 비운 그 젖은 자리에 앉은 다른 승객에게도 심심한 유감을...)
그냥 처음 받은대로 앉을 걸 -_- |
자다르에서 스플리트까지는 버스로 두시간 반 정도.
그런데 두시간정도 달려 트로기르(Trogir)를 들릴때만해도
구름이 좀 보일 뿐 날씨가 괜찮았었다만
잠시 졸다 스플리트에 거의 다와서 깨어보니 하늘이 또다시 심상치않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스플리트에 버스가 들어설 무렵부터는
또다시 (아침에 자다르 갈 때 만큼 심한) 폭우가 우리를 맞이했다. -_-;
심지어 이번엔 가까운 곳에 벼락 치는 것도 수차례 보이고;;;;;
어쨋건 스플리트 버스 터미널에 도착.
그런데 이 비 속에서 도저히 이동할 방법이 없어 숙소에 연락했다.
"저희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비 때문에 그러니 픽업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사람 보내겠습니다."
다행히 숙소에서 친절하게도 차를 보내준단다. 휴~
그렇게 폭우가 내리는 버스터미널에서 10여분 기다리니
약속한 차량이 왔다.
서둘러 짐을 실은 뒤 차에 탑승한 뒤
우리를 마중나(와서 짐 싣는다고 비를 쫄딱맞은)온 청년과 얘기를 나눴다.
"숙소 주인이 친형인데,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형이 여러분 데리러 가래서 왔어요. ㅎㅎ"
"헉 미안해요 -_-;"
"괜찮아요. 근데 어디서 왔어요?"
"한국이요."
"오~, 한국은 그렇게 공부 많이하고 잘 한다면서요."
"헐~ -_-; 그런건 어떻게?"
"TV같은데서 보고 그랬어요."
"하지만 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도 하고 그러는데요 멀."
"자살? 말도 안돼 -_-;"
대충 이런 얘기를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크로아티아의 의사 지망생 훈남 청년과 나눴다.
비만 아니었으면 숙소까지는 20분 정도 걸으면 될 정도로 가까웠다.
그리고 비도 그 새 잦아들어 거의 그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마중나온 의대지망생의 형과 얘기 시작.
의례 있는 예약 확인, 여권 검사등을 하다가 주인장이 불쑥 얘기했다.
"지금 어디 쪽에서 오는길인가요?"
"플리트비체에서 자다르 거쳤다가 오는 길입니다.
오는 길에도 자다르 쪽에서 비가 많이 왔는데
여기서 또 소나기를 만났네요."
"아하~ 당신들이 비를 몰고 왔구만. ㅋㅋㅋ"
"ㅋㅋㅋ"
이곳은 1년에 비오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졸지에 우리는 Rain-bringer가 되었다.
"내일 오후에 체크아웃하고 흐바르 가는 배 타기 전까지
프론트에 짐 좀 맡아주실 수 있나요?"
"잠시는 가능하긴 한데 오랜 시간은 곤란합니다만"
그러자 갑자기 우리를 데려온 주인장의 동생이 한 소리 한다.
"아 그러지 말고 좀 맡아줘~, 뭔 대수라고."
그러고는 우리를 돌아보며
"걱정마세요. 맡아줄겁니다"
하고는 웃으며 작별인사를 한다.
훈남 총각 고마워 ^^;
체크인을 마치고 방을 안내 받은 뒤 입실.
오...그런데 프런트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만 상당히 괜찮은 숙소다.
과연 우리가 진짜 12만원짜리 숙소에 예약한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1층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다 |
테라스 길이에서 느껴지겠지만 꽤 넓은 평수 |
숙소 이름은 Boban Luxury Suite.
지금 2대째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비수기에는 1박에 10만원도 안된다. 이번 여행 최고의 가성비.
짐을 풀고 늦게나마 (이미 저녁 9시반이었다)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멀리가지 말고 그냥 숙소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자.
내 쪽은 크로아티아 특산품 송로버섯이 가미된 페투치니 아내 거는 뭐였는지 기억 안난다 -_- |
비도 오고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말고도 손님들이 두 테이블 더 있었다.
주인장은 테이블마다 원래 주문한 것 이외에
자기가 직접 만든 것들이라면서 라키아와 귤피과자를 권하기도 했다.
말린 귤 껍질에 설탕을 입힌 과자 |
라키아. 플리트비체에서 맛본 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
숙소 주인장. 다른 테이블에도 라키아를 권하고 있다 |
숙소도 음식도 만족스러웠다.
주인장은 친절하면서도 이 곳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져
아내는 더욱더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Split에서 숙박할 일이 있는 분들에게는 강추.
(레스토랑은 저렴한 편이 아니지만 숙박객 20% 할인이 있다.)
이제 눈을 붙이고 내일은 흐바르(Hvar)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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