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벗어났다.
이스탄불 대학과 모스크 사이 길을 좀 걷다보니
하나둘씩 상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어느새 우리는 본격적인 재래시장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 중 하나인
카팔르 차르슈(Kapalı Çarşı), 일명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
그랜드 바자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계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기도 하다.
1461년이라고 적혀있다. 무려 550년의 역사 |
워낙에나 큰 시장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시간도 많지않다보니
천천히 구경할 여유 없이 그냥 지나쳐야 했다.
워낙 큰 시장이니 구역별로 모습이 많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통과한 구역의 모습은
관광객 상대가 주인 듯하던 므스르 차르슈에 비해
현지인 생활용품 시장의 느낌이 많이 나서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계속해서 걷다보니 목이 마르다. 마침 주스 가게도 눈에 보이네.
아저씨 사과 주스 하나요~
보기는 화려했지만 철이 아니라 그런지 사과도 맛은 그닥... 전날 마신 석류 주스도 별로였는데. 쩝 |
주스 마시며 좀 쉬었으니 다시 힘내서 호텔로 가자.
(쉴레이마니 모스크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
호텔에 가서 맡겨뒀던 짐을 찾고 나섰다.
아참, 여러가지로 친절했던 호텔측에 감사 인사 남겨야지.
이번 여행에서 만나는 인연들에게 주기 위해서
한국식 문양의 책갈피와 노리개들을 들고왔었기에
숙소 주인에게 책갈피 하나를 드렸다.
이제 진짜 이스탄불을 떠날 시각.
단 하루였지만 즐거웠고 인상깊었던 도시,
다음에도 꼭 다시 들르고 싶은 이스탄불을 뒤로하자.
공항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걷는데
갑자기 웬 터키 청년이 말을 걸더니
이스탄불이 맘에 드는지, 온지는 몇일이나 됐는지 물어본다.
너무나 좋고 하루밖에 안있었지만 아쉽게도 지금 몰타로 간다고 했더니
몰타가 멋진 곳이고 옛날에 (자기네) 오스만 제국의 땅이었다고 했다.
흠...(속으로만) 내 생각엔 네가 역사 공부 다시 해야할 거 같은데.
(몰타는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적이 없다.)
여하간, 그는 우리에게 즐거운 여행 되라며 손을 흔들어줬다.
외국인한테 그냥 부려본 오지랍이었을까,
아니면 실패한 삐끼질이었을까?
2시간 반의 비행 후 도착한 몰타 국제 공항.
국제선 승객이 가장 많은 10개 공항에 꼽히는
인천과 아타튀르크 공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강화도보다 조금 큰 크기와
불과 인구 40만명인 몰타의 공항은
게이트는 커녕 걸어서 입장할 정도의 아담한 크기였다.
아담한 몰타 국제 공항 |
게이트는 커녕 버스도 없다 |
이제 숙소가 있는 산 질리안(San Ġiljan / St. Julians)에 가자.
택시로 가면 15분에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이곳 저곳 들르며 돌아가는 버스 덕에 40분이나 걸렸다.
버스에서 내리고나니 도착한 곳은 어두컴컴한 길가.
불과 몇시간 전에 이스탄불에서의 북적임을 보다가
이토록 어둡고 조용한 동네로 오니 어색한 느낌이다.
그래도 좀 불빛이 많은 바닷가로 나와 숙소로 걸어가자.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15분.
쌀쌀하지만 이스탄불보다는 덜한 몰타의 기온 덕에
그래도 걸어가는 길이 많이 춥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산 질리안의 흔한 풍경 |
좀 전까지 있던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는
'크리스마스 그게 뭔가염'의 분위기였던 반면에
몰타는 카톨릭 국가인지라 곳곳의 트리와 장식들이 우리를 반겼다.
역시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이윽고 도착한 오늘의 숙소는 인하위(Inhawi) 호스텔.
1박에 1인당 16.5€의 저렴한 가격과 9점대의 평점을 보고 예약했었다.
평점이 좋기는 해도 저렴한 호스텔이니 큰 기대는 말아야지 했었다만...
오...상당히 깔끔한데?
별다른 장식 없는 베이지색 라임스톤 건물은
시원하면서도 잡티 없이 깨끗한 느낌이 들어서 맘에 들었다.
우리 방은 2층 침대 4개가 있는 8인실.
방을 안내받고 짐을 풀고 있으니 내 침대 위의 흑인이 인사를 건넨다.
감비아에서 왔다는 살리프는 여기서 무려 1달째 지내는 중.
아마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라인 출신인지라 그런지
감비아가 어디 있는지 아냐고 싱긋 웃으며 물어보는 그에게
서아프리카쪽 아니냐고 말하니까 어떻게 아냐고 오히려 신기해한다.
세계 지도 덕후라서 그렇다는걸 얘기하기 어려워 대충 넘어갔다만...
좀 있으니 또 동양인 여자 두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광저우 출신 중국인과 대만 출신인 두 친구는
지금은 유럽에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살다가 같이 여행하러 왔다고 한다.
중국인 쪽은 한국 광주에서 유학한 적도 있어서
광주(광저우의 한국식 발음)에서 광주로 유학간 재밌는 인연도 있더라.
(그렇게 하고는 싶지만)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말을 못붙이는 우리에게
호스텔은 어느정도의 로망이 실현되는 공간.
그나저나 우리는 저녁을 먹어야지.
그런데 시각은 이미 9시를 넘었고
숙소 오던 중에도 레스토랑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역시나 주변을 좀 다녀봤지만 갈 만한 곳이 없다.
뭐...피곤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프지도 않으니
호스텔의 자판기에서 파는 코코아와 과자로 때우자.
지나가다가 슬쩍 들여다본 숙소 앞 성당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심야 미사가 진행중이었다 |
호스텔 공용 공간에 앉아서 잠깐 얘기하는데
아까 인사 나눴던 살리프가 "How you doing?"하고 말을 건냈다.
그런데 아내가 그를 못알아보고
"Fine.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말했다.
살리프는 껄껄거리며 아까 얘기했잖아~하고 아내를 놀렸고
아내는 그제서야 그가 살리프임을 알고는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여행 에피소드가 생기는구나. ㅋ
나도 얼른 꿈나라로 가야지.
이제 내일부터 이번 여행의 본편인 몰타 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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