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편은 이스탄불 각지로 연결되는 페리 터미널.
바다 구경을 할 겸 가볼까?
터미널 앞 공터에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이 있어서 구경했다.
튀긴 도넛에 시럽을 끼얹은 로크마(Lokma) 가게네. 하나 사볼까?
그런데 갑자기 꼬마 한명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장갑 하나 1달라에 사달라면서 들이민다.
아...분명히 이거 하나 사주면 주변에 다른 애들 다 들러붙는다.
슬쩍 둘러보니 주변에 몇명 보이네.
미안해. 게다가 우리 이미 장갑도 있단다.
하지만 이녀석 끄떡도 않고 계속 하나 사달라면서 매달린다.
심지어 아예 내 외투 주머니에 장갑을 집어넣기까지 한다.
내가 도망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쫓아다니는 웃긴 상황.
어째어째 붙잡아서 돌려주는데
그새 주변의 다른 애들도 자기 거 사달라면서 몰려든다. 으익~
이번엔 다시 우리가 도망갈 차례.
결국 갈라타 다리(Galata Bridge) 아래까지 도망갔더니
더이상은 쫓아오질 않았다.
아마도 여기는 아이들의 영업 가능 영역이 아닌가보다.
그런데 얘네들이 다시 몰려들까봐 로크마 사러는 못가겠다. -_-;
어쩔 수 없이 그냥 숙소로 가야겠다.
트램을 타고 술탄 아흐멧 역으로 가자.
이스탄불에서의 우리 숙소 블루 투아나 호텔 |
숙소에 돌아가서 우리 방을 안내받았다.
방은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인데...좀 많이 좁네 -_-;
그래도 이 지역에 1박에 35000원에 잘 수 있는 곳 많지 않다.
우선은 시차 문제도 있고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탓에
저녁 일정 전에 숙소에서 한 시간만 잠 좀 자자.
한시간 눈을 붙인 후 숙소의 루프탑으로 올라가봤다..
사실 루프탑이 이 숙소를 선택했던 제일 중요한 이유인데
바로 술탄 아흐멧 모스크와
마르마라(Marmara) 해를 같이 볼 수 있는 전망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북쪽에는 술탄 아흐멧 모스크 |
남쪽으로는 마르마라해(Marmara)와 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 |
와...
방이 좁아서 뭐 어쩌고 그런 얘기는 쑥 들어가게 만드네.
진짜 다른거 다 필요없고 루프탑 경치가 갑이라서
여기 앉아서 차 한 잔 마시면서 몇시간도 있을 수 있겠다.
루프탑에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올라오기로 하고
트램 역 쪽으로 향하기 위해 길을 나서자.
숙소 근처의 가게에서 마그넷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마그넷 하나 계산을 하려는데
가게 주인은 자기네 수제 비누 자랑을 하며 설명을 늘어놓는다.
십수가지 비누들 하나하나 특성을 설명하는데
말 끊을 타이밍도 잘 못잡고 어리버리...
뭐 그래 어떻게든 쓰면 되니까 비누 하나 사고 탈출하자.
그래서 5 ₺(1300원)짜리 마그넷 하나 사려다가
(분명히 바가지일) 28 ₺(7500원)짜리 비누를 사버렸다. -_-;
좋은 비누라고 믿자;;;
마그넷 사려다가 비누까지 사버린 가게. 안에 선하게 웃으며 앉아있는 주인에게 말렸다 |
술탄 아흐멧 모스크 근처에도 작은 바자르 하나가 있어서
가는 길에 구경해보기로 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그런지
아라스타 바자르(Arasta Bazaar)는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
그리고 카페트나 섬세한 공예품 등 고급스러운 것들도 많이 보였다.
딱히 살려는 것은 없으므로 스윽 지나가며 구경하는데
갑자기 한 가게 주인 아저씨가 우리에게
"Are you Koreans?"하고 물어본다.
헐, 어떻게 알아봤지?
그렇다고 했더니 더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나 한국어 공부하는데 잘 모르겠는거 하나만 좀 가르쳐줄래?"
푸하핫, 미끼임이 분명하지만 이건 물 수 밖에 없다.비켜~ 이 떡밥은 내 거야.
아저씨의 질문은 나름 진지한 것으로
"아까"와 "옛날"의 차이가 뭔지에 대한 것이었다.
나름 짧은 영어를 동원하여 아까는 짧은 시간 전,
옛날은 몇년 단위의 긴 시간 전이라는 걸 설명했더니
아저씨는 노트에 열심히 받아 적으신다.
그리고 다 받아 적으신 아저씨의 여지없는 말씀.
"알려줘서 고맙네, 친구. 내 보답의 의미로
우리 가게 캐시미어 제품을 특별 할인해줄게."
아하하...캐시미어만 아니었어도 뭔가를 샀겠다만...쏘리~
이제 그러면 트램을 타고 시르케지(Sirkeci) 역으로 가자.
시르케지 역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로도 유명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출발역.
그렇다고 우리가 기차타러 이 곳에 온 것은 아니고
터키의 유명한 종교의식 춤으로 유명한 세마(Sema) 댄스를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역 대합실에서 하기 때문에 들른 것이다.
지금은 6시 조금 넘은 시각이고 공연 시각은 저녁 7시반이지만
혹시 미리 표를 사놔야할 지 모르니 가보자.
역 근처에 가니 포스터도 곳곳에 붙어있고
홍보 안내물을 나눠주는 분들도 몇 만날 수 있었다.
여쭤보니 표는 나중에 시작할 때 와서 사면 된다고 한다.
그럼 우선 저녁 식사부터 하고 오면 되겠군.
역 길 건너편에 있는 코냘르 레스토랑(Konyalı Lokantasi)으로 가자.
1897년에 문을 열었고 요리 관련한 상도 여러번 받은 곳이라는데
다만 고급 레스토랑은 톱카프(Topkapı) 궁전 내에 있고
시르케지에 있는 곳은 카페테리아 레스토랑이다.
양고기 요리와 커리, 빵 등 몇가지 요리들을 골랐는데...
나쁜 건 아니지만 굳이 일부러 찾아와야할 지는 모르겠다.
톱카프 궁전 내 레스토랑은 괜찮으련가 모르겠다만
시르케지 점은 그저 그렇네.
이제 시르케지 역으로 돌아가자.
표를 사고 대합실에 준비된 자리에 앉으니 차를 권한다.
날도 춥고 난방도 안된 대합실이라 따뜻한 차가 반갑다.
차를 마시며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후 4명의 연주자들이 나와서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세마 댄스를 출 세 명의 무용수가 나왔다.
느릿느릿하게 한발씩 걸어서 무대 가운데로 온 무용수들은
종교 의식에 걸맞게 경건한 절로 공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양팔을 교차하여 어깨를 감싼 준비 자세를 취한 무용수들은
곧이어 세마 댄스의 시그니쳐 무브인 제자리 돌기를 시작했다.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분파인 수피파에서는
신과 합일이 되는 것을 지향하는데
세마 댄스는 바로 그 신과의 합일을 위한 행위.
보고 있기도 어지러운 동작을 계속 하는 것이 신기하다.
경우에 따라 이 춤을 통해 황홀경에 빠져드는 신도도 있다는데...
어찌보면 춤이라곤 해도 아주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라서
1시간의 공연(연주 30분, 춤 30분)이 지겹지 않을까 생각됐는데
그 경건한 기운 때문인지 넋놓고 구경하다가 시간은 금새 지나갔다.
세마 댄스 공연이 끝나고 이제는 다시 숙소로 돌아갈 시각.
트램을 타러 갔는데 충전해둔 금액이 동났다.
그래서 아내는 먼저 플랫폼에 있고 혼자 충전을 하러 갔는데
아마도 인도나 파키스탄 쪽 가족들인 듯한 사람들이
교통카드 사는 법을 영어로 나한테 물어본다.
짧은 영어 만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발권해서 충전하는 과정까지 직접 하면서 설명해줬다.
비도 추적추적 오고 애들도 있는데 얼른 목적지로 가시기를.
술탄 아흐멧 역에서 내리고 광장을 지나 숙소로 걸어가는데
술탄 아흐멧 모스크와 아야소피아의 야경이 아름답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사진 한 장씩.
아직 저녁 9시밖에 안됐지만 장거리 비행과 시차때문인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졸리네.
내일 또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