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팡(瑞芳) 역을 지나 지우펀(九份)으로 향하는 산길에 들어서니
산등성이에 아메이차로우(阿妹茶樓)를 비롯해서
많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샤하이성황묘(霞海城隍廟) 근처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오후 5시 50분 무렵.
주차장에서 지우펀 옛거리까지는 오르막길이 계속되었는데
걱정한 것에 비해 다행히 어머니도 잘 따라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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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바라본 샤하이 성황묘. 건물이 화려해서 눈에 바로 띈다 |
본격적인 지우펀 옛거리 입구에 도착하니 상당한 인파가 보인다.
으아...이거 뭐 구경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네.
어쨋건 기사님과는 7시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골목 안으로 향했다.
갖가지 먹거리들과 상점들이 우리의 눈을 유혹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던 중 나타난 가게는 아주쉐짜이샤오(阿珠雪在燒).
그래 더우니 이 가게의 땅콩 아이스크림 롤은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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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의 흥행으로 인해 다른 땅콩 아이스크림 가게들도 생겼나보다.
한글로 떡하니 오리지날이라고 적혀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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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에 싸서 흘리지 않고 먹기 편하게 준다 |
땅콩이 들어간 엿을 간 가루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얇은 밀전병에 싸서 주는데 소금도 가미되었는지 단짠의 느낌이 나고
거기에 땅콩의 고소함과 밀전병의 쫀득함이 식감을 더해준다.
뭐 반드시 먹어야할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하나에 불과 40 TWD (약 1500원)이니 부담없는 시원함이다.
계속 골목으로 들어가다보니
지우펀 옛거리의 홍등들이 화려하게 켜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복잡한 인파들을 계속 헤치며 들어가다보니 어머니가 힘드셨나보다.
부모님은 한 음료수 가게에서 쉬고 계시기로 하고
아내, 동생과 함께 아메이차로우로 향했다.
그런데 안그래도 많던 인파가
아메이차로우로 가는 갈림길 앞에서 급격히 늘었다.
거의 앞으로 가질 않는 수준.
알고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길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그런 것.
돌아갈 시간이 그리 넉넉치 않은데다가
어짜피 아메이차로우에서 차 한잔 하는 것도 불가능할 게 뻔했다.
아쉽지만 바닷가 야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다른 길로 가자.
루이팡과 지룽(基隆) 항구를 내려다보는 야경은
다행히 아쉬움을 만회할 만큼 예뻤다.
거기다 때마침 누군가가 작은 폭죽을 계속해서 쏘아올렸다.
이쪽에서 원래 가려고 했던 아메이차로우 쪽을 바라보니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들어찬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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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 조각이 있는 옹벽 위쪽이 아메이차로우 쪽이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장소 중 하나인
아메이차로우를 들러보고 싶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은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 밖에 없겠다.
이제 기사님과의 약속 시간도 다되어가니 부모님께 돌아가자.
부모님이 기다리시던 음료수 가게에 가서 같이 망고 빙수를 시켜 먹고
돌아나오는 길에 아란차오자이궈(阿蘭草仔粿)에서
들어갈때 어머니가 점찍어둔 떡을 몇개 샀다.
종류는 단팥(甛紅豆)과 차이푸미(菜蒲米)라는 정체 모를 것 두 가지.
차이푸미는 부들 나물인지 무말랭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짭짤시큼하고 독특한 향이 나서
(우리 가족은 꽤 매력적으로 생각했다만)
새로운 맛에 도전하고픈 사람들만 먹어보면 좋겠다.
그런데 돌아가던 중 갑자기 이 비좁은 길에 차가 한 대 나타나서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느라 엄청 혼잡해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타난 차량의 정체는 알고보니 쓰레기 수거차.
물론 이해해야할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이긴 하다만
왜 하필 관광객이 몰려든 이 시간에 수거를 꼭 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기사님을 다시 만난 후 이제 타이페이로 돌아갈 시간.
돌아갈 때는 기사님에게 시먼딩 입구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저녁도 먹고 어제 어머니가 못본 시먼딩 구경도 하고
월병이나 누가 크래커 등의 쇼핑도 해야지.
우리가 택시를 8시까지 예약해서
기사님 퇴근이 많이 늦겠다고 걱정하시던 어머니는 시먼딩에 도착한 후
여러모로 친절했던 기사님에게 감사의 표시로 팁을 따로 드렸다.
어머니 인심은 어딜 가서도 한결 같으시다.
이제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대만에 왔으니 뉴로미엔(牛肉面)도 먹어야겠지?
시먼딩에서 유명한 뉴로미엔 가게를 급하게 검색했다.
그런데...
찾아낸 두 가게중 하나는 한시간은 기다려야할 줄을 서야 했고
나머지 한 가게는 아예 오늘 매진이라서 영업 끝이라고 한다.
헐...
이래저래 난항을 겪자 부모님이
그냥 컵라면과 떡 같은거로 넘겨도 괜찮으니
쇼핑만 좀 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그러신다.
아쉽긴 하지만 계속 왔다갔다하기가 죄송했던지라
딱히 뭐라 대꾸하기도 힘들었다.
선물 쇼핑은 해야하니 우선 월병가게부터 찾자.
근처에 월병을 팔 만한 가게를 둘러봤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거기다 그나마 하나 봐뒀던 가게는 몇분 지난 사이 문을 닫았다.
이런 젠장...
가족들 다같이 어쩌지 하고 헤매던 중
길에서 발마사지 호객행위를 하던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뛰어가서 혹시 유에빙(月餠) 파는 곳을 아시냐고 물어봤다.
다행히도 아주머님은 선선하게 웃으시더니
길건너에 있는 한 가게를 가리켰다.
그런데 그 가게를 들어가보니 월병이 있기는 한데
실상은 일반 빵집이라서 월병이 주종목도 아니거니와
당연히 퀄리티도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것도 실패인가 싶어 아쉬워하는데
가게 문 밖에 아까 그 아주머님이 다시 날 보고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가게를 나서니 자기가 더 나은 가게가 생각났다며
직접 우리를 데리고 한 블럭 떨어진 다른 가게로 데리고 간다.
본인 가게 손님 구하는 일도 내버려두고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시는 아주머님이 너무나도 고마운 순간.
그런데 그렇게해서 도착한 가게는 평범한 관광상품점. OTZ
아아...감사는 한데...아주머님, 마음만 받겠습니다. -_-;;;;;
하지만 실망은 금물. 의외의 전화위복이 나타났다.
그 관광상품점 바로 근처에 타이허춴통빙(太和傳統餅),
바로 월병 전문점이 떡하니 있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그 아주머님 덕분이라고 생각하자. :)
타이허춴통빙에서 전통 중국식 월병을 사고
다른 건 어떤게 있나 둘러보니 타이양빙(太陽餅)이 있다.
달을 의미하는 월병과 대비되게 태양을 뜻하는 태양병은
중국 본토에 없는 타이완 오리지널인데
겹겹이 쌓인 얇은 밀가루 반죽 층의 페이스트리 빵 같은 식감과
속의 달큰한 잼이나 꿀로 맛을 낸 과자이다.
그러나 시식을 해보신 부모님은 월병이 낫다며 구매는 안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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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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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병 |
월병을 산 후에는 어제 들렀던 쇼우신방(手信坊)에 다시 가서
선물용 누가 크래커와 펑리수(鳳梨酥)를 잔뜩 구매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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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해본 누가 크래커와 펑리수 중에서는 쇼우신방 것이 제일 낫더라 |
숙소로 돌아와서 컵라면과 떡, 과자 등으로 요기를 해결한 후
부모님과 동생은 피곤해서 곧장 침대로 향하고
아내와 나는 그래도 뭔가 아쉬워서 마사지를 받으러 나섰다.
아까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신 아주머님이 생각났지만
늦은 시각(10시 반)이라 아직 계실지도 의문이고
우리도 다시 숙소에서 시먼딩까지 다시 가기는 피곤했다.
대신 선택한 곳은 숙소에서 5분 거리인 바이리주티휘관(百利足體會館).
40분간의 발마사지가 1인당 399 TWD이네. (약 만5천원)
타이완이 물가는 확실히 우리보다 싼 것 같다.
마사지사에게 실컷 괴롭힘(?) 당하고나니 개운하다.
마시지를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피곤할 때 이렇게 한 번씩 받으면 확실히 효과는 있는 듯 하다.
숙소 돌아가기 전에 다시 까르푸를 들러서
부모님이 추가로 부탁한 인스턴트 밀크티를 종류별로 사들고 왔다.
(아버지가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셨다.)
이제 푹 자고 내일을 기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