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4일 금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1 (1) : Oslo, 호랑이 도시

세시간의 비행 후 오슬로(Oslo) 공항에는 자정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오슬로 중앙역까지 와서 숙소 쪽 가는 트램을 기다리는데
4일만에 만난 어둠은 낯설었고 거기다 왠지 모를 두려움마져 안겨주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게 도시여서 느끼는 두려움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인생을 대도시에서 살았는데
불과 며칠의 백야 오지 생활이 도시 밤거리를 무서워하게 만들다니.

밤이라서 오슬로 패스 티켓을 못샀는데
하필 현금도 큰 단위의 돈 밖에 없다.
혹시나 트램에서 잔돈으로 바꿔줄까 싶었지만 그것도 안되는 상황.
우리가 어쩌지 하고 있으니
기사 아저씨가 다음에 탈 때 두 배로 내라며 그냥 태워준다.
가...감사합니다. ㅠㅠ

트램과 도보를 포함해 30분정도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
이번 숙소는 4층인데...역시나 엘레베이터가 없다. OTZ
안그래도 힘든데 오밤중에 다른 주민들 깰까 조심도 해야하고...
짐가방 두 개를 4층까지 옮기고 나니 죽을맛이다.
밤도 늦었으니 대충 정리한 뒤 얼른 씻고 잠이나 자자.

...

늦게 잔 만큼이나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식사를 했다.
정말 소형 밥솥은 이번 여행만으로도 제 값 이상을 하는 것 같다.
이거 덕분에 몇 끼를 해결하고 그 덕에 얼마를 아꼈는지 모르겠다

이제 오슬로 시내 구경을 다녀보자.
우선 트램을 타고 오슬로 중앙역으로 나가자.
트램 한 번 타는데 1인당 5천원 가까운(70 kr) 돈이 든다.
거기다 밤에 못냈던 거까지 두 배로 내니 이건 뭐......
얼른 관광안내소 가서 오슬로 패스부터 사야지 교통비로 거덜나겠다.
...
그런데 3일짜리 오슬로 패스 하나 가격이 745 kr. (약 104000 원)
아...그냥 한방에 거덜나냐 천천히 거덜나냐 차이였구나. OTZ

이거 한 장이 10만원......

돈 10만원 들여서 산 티켓치고는 되게 부실하다.
그저 종이일 뿐인데다가 심지어 만료일도 내가 직접 기입하는 거고
교통수단을 탈 때에도 이걸 기사에게 보여주는 게 전부다.
뭐 시민사회의 상호 신뢰가 충분히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거겠지만
악용하는 관광객들도 은근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역 앞 광장으로 나오면 오슬로의 상징인 커다란 호랑이 동상이 보인다.
19세기 시인 비외른스티에르네 비외른손(Bjørnstjerne Bjørnson)의 시에서
위험한 도시를 호랑이로 묘사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후로 오슬로의 별칭이 호랑이 도시가 되었다나?
사실 호랑이는 유럽과 아무 상관 없는 동물이라 약간은 황당한 사연.


우선 중앙역에서 노르웨이 왕궁까지의 오슬로 중심가를 걸어보자.
오슬로의 인구는 70만이라 이 숫자로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들렀던 다른 노르웨이 도시들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현대적인 도시라는게 건물들만으로도 한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중심가를 걸으니 오가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상점가 골목들에는 커다란 테디베어 풍선들이 공중에 매달려있다.
풍선에 적힌 Hug life란 문구로 검색을 해보니
EGER 쇼핑몰 주관의 '즐거움, 온기, 관용의 전파' 주제로 한 전시인 듯 했다.


상점가의 끝에 있는 국회의사당에서부터 왕궁까지는 공원으로 되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이 엄중한 경비로 둘러싸여
실생활권과는 별개의 세상처럼 느껴지는게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 몇 번 본 모습이지만)
왕궁과 국회의사당이 혼잡한 시내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정면 멀찌감치 보이는 건물이 노르웨이 왕궁이다.
왼쪽은 국회의사당

이미 트론헤임에서도 경험했지만
위도와 상관없이 맑은 날씨의 오슬로도 뜨거운 기온을 자랑했다.
공원 옆 오펜트(Åpent) 베이커리에서 차가운 커피로 더위를 달래보자.

왕궁의 정원은 누구나 아무런 제재없이 들어갈 수 있고
왕궁 또한 여름철에는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한다.
다만 내부 관람을 위해서는 후문에서 티켓을 끊어야하고
정해진 시간에만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들어가볼 수 있다.
우선 오늘은 왕궁에 가볼 생각이 없으니 공원을 질러가자.

천천히 구경하며 왕궁을 가로지른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숙소 주인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인 FYR Bistronomi로 향했다.




립과 감자튀김 그리고 생굴을 시켰는데 515 kr(약 72000원).
먹는 양 적은 우리니까 이 정도지
보통 다른 사람들이면 10만원 치는 시켜야 겨우 부족하지는 않을 정도다.
2주 넘게 경험했으면서도 여전히 절레절레하게 만드는 물가지만
그래도 오늘 들른 레스토랑의 요리는 엄지 척.
특히나 굴은 라임향 가득한 새콤한 소스가 비린내는 싹 잡아주면서도
굴 특유의 바닷내와 어우러져서 우리 둘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마리당 만원꼴의 가격만 아니면 더 시켜먹고 싶은 마음.

식사를 했으니 다시 관광을 해야지.
트램을 타고 아케르후스(Akershus) 요새쪽으로 가보자.

오슬로 시내는 여느 유럽 올드 시티들 처럼 길이 좁은데다가
트램이 많이 다녀 차를 이용하기가 편치 않다

2020년 8월 28일 금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0 (3) : 밤을 잊은 곳에서 밤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스발바르 도착하던 날 여러차례 착륙시도를 했던 얘기를 꺼내자
가이드는 그 때 밑에서 제발 좀 착륙하라고 애원하고 있었단다.
가이드만 하는게 아니라 공항 택시 기사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
더군다나 그 때가 새벽 4시가 넘은 시각이었으니
얼른 마치고 집에가서 자고 싶었을 그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 말을 재현할 때 그의 제스쳐가 어찌나 절실하던지... ㅋ)

아 그리고 오늘 너무나도 깨끗하게 갠 날씨 얘기를 하니까
이런 날이 일년에 몇일 안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제 떠나려니 겨우 맑아지냐고 불평을 했지만
알고보니 이 곳에서 이런 날씨를 보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던 거다.
이런 때 아내와 둘이서 하는 얘기로
우리 반려견이었던 푸메가 하늘에서 구름 쫓아냈나보다 하는데
뭐가 되었건 고마워하는 맘으로 오늘 날씨를 대해야겠다.

우리가 다닌 투어가 매우 심심해 보이긴 한데
배를 타고 근교의 폐광마을인 피라미덴(Pyramiden)을 들르거나
바다코끼리나 북극곰같은 야생동물을 찾아가는 것들도 있으니
스발바르 투어가 죄다 우리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도 예약이 다 차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다.
뭐 그래도 그 덕에 재미난 콜롬비아인 가이드를 만났다만. ㅋ

다시 차를 타고 마을 중심가로 돌아왔다.
저녁에 오슬로로 갈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점심 먹을 가게도 찾을 겸 마을을 어슬렁거려 본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선택은 이틀 전에 들렀던 프루에네(Fruene).
저번에는 후식만 먹고 갔지만 이번엔 식사를 하자.

치킨 커리 샌드위치와 멕시칸 스프

이틀 전에 커피와 케익을 먹으면서도 괜찮다 싶었는데
오늘의 식사용 음식들도 훌륭하네.
식당이라기보다는 카페에 가까운 가게지만
어쨋건 훌륭한 음식들로 배를 채울 수 있었으니 무슨 상관인가.
뭐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기왕 스발바르까지 왔는데
순록고기 요리가 있는 레스토랑은 가볼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점심 식사도 마쳤지만 오늘 밤 비행기 타기 전까지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우선 (이미 체크아웃한) 숙소로 간 다음 로비에서 쉬자.
로비 벤치에 앉아서 뒹굴거리며 졸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오슬로 정보도 찾아보고
아내는 스발바르 브루어리 맥주도 마지막으로 즐겼다.

한참동안 숙소 로비에서 시간을 보낸 후
아직 비행기 시간은 이르긴 해도 공항가는 버스를 탔다.
이미 알다시피 공항까지는 차로 15분.
복잡할 것도 없는 공항이니 체크인까지도 금방이다.
그러다보니 게이트 앞에서 다시 무료한 시간을 한참 보내야겠다.
정말 여태껏 여행중 언제 이래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스발바르에서 보낸 3일 내내 무료하고도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 무료함이 싫지 않은 것은 스발바르이기 때문 아닐까?

저녁식사도 공항내 매점에서 간단하게 해결하며 기다린 끝에
드디어 오슬로(Oslo)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시각이 되었다.
무료한 기다림이 끝나서인지 장난기가 발동해서 목베개로 장난을 좀 쳐본다.

아내의 반항이 약간 있었지만...


이제 다시 밤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주었던 백야의 스발바르여 안녕.

2020년 8월 23일 일요일

Jin과 Rage의 Norge 여행기 - 20180730 (2) : 평화로운 야생의 땅, Svalbard

차는 이번엔 마을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향했다.
10분간 달려 도착한 곳에는 안내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공항에서 나올 때도 봤었던 북극곰 주의 안내판.
그 밑에 적혀 있는 "Gjelde hele Svalbard"의 의미는
스발바르 전역에 적용된다는 뜻이다.


이 곳은 롱위에아르뷔엔 마을의 경계다.
지금 우리에게는 저 너머로는 조용한 자연 풍경만이 펼쳐져 있지만
스발바르는 사람(2천여명)보다 북극곰(3천여마리)이 더 많은 곳.
차에서 내리기 전 가이드는 혹시나 북극곰이 나타나면
곧바로 차에 탑승해서 피하라고 알려줬다.
이게 드문 일이 아니라 실제로 가끔씩 나타나기 때문에
마을을 벗어날 때는 반드시 총이나 차량을 갖고 있어야 한단다.
또 북극곰들이 대체로 마을로는 잘 오지 않지만
가끔은 먹을 것을 찾으러 마을로도 내려온단다.
그야말로 야생과 함께하는 스발바르다.


다들 안내판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이드는 진흙뻘 쪽으로 내려가더니 우리를 불렀다.
그가 부르는 쪽으로 가보니 뻘밭에 떡하니 찍힌 발자국.
북극곰 발자국이다!
가이드 말로는 며칠전에 나타난 녀석의 발자국이란다.

우리의 콜롬비안 가이드
 
선명한 북극곰 발자국

가이드 말로는 며칠 전에 이 북극곰이 나타났을 때
마침 투어를 하던 다른 가이드와 여행객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쫓아내기 위해 총까지 쐈다고 한다.
다만 총은 어디까지나 위협용이지 북극곰을 쏘면 안된단다.
북극곰은 멸종위기 동물이기때문에
만약 북극곰을 맞추게 되면 이에 대한 정당성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며칠전 출현했던 북극곰에게 총을 쏜 사건도
(가까이서 보여주겠다는) 가이드의 과욕으로 곰의 접근을 허용했던 탓이라
(곰을 맞춘 건 아니지만) 총을 쏜 가이드가 많이 비난받았다고 한다.

다시 차에 탑승한 우리는 이번엔 마을을 벗어나 달렸다.
마을을 벗어난지 얼마 안됐는데도 금새 야생 동물들이 보인다.

순록

기러기는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사실 야생 동물중에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북극여우지만
운 좋으면 마을 근처에서 만나기도 한다지만
이렇게 차를 타고 가면서 만나기는 아마도 어렵겠지.

마을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달리던 차는
어느새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 언덕의 끝에서 커다란 안테나 두 개가 나타났다.


이는 태양으로 인한 지구 전자기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레이더.
EISCAT이라는 국제기구에서 운영하는 것인데
극지방은 지구 자기권이 궤도가 낮아서 가능한 조사다.

공식적인 투어는 끝나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던 차는
마을로 돌아가던 중 방향을 틀어 투어 회사 건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썰매개 축사.
겨울에는 얘네들이 열일하겠구나.


대부분의 개들은 철망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몇마리는 나와 있었다.
그 중 린네아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한껏 애교를 부렸다

가이드는 우리를 따뜻한 모닥불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다들 둘러앉아 커피와 과자를 즐기며
오늘 투어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우리에게 감상을 물어보기에 스발바르가 strange하다고 했더니
가이드가 뭐가 가장 이상했냐고 되물었다.

"여기서 콜롬비아인 가이드 만난 거요."

지체 없는 내 대답에 모두들 웃음이 빵 터졌다.
가이드도 웃더니만 어떻게 여기서 일하게 되었는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후셋 레스토랑에 인턴으로 들어갔다가
인턴기간이 끝나고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술을 먹었는데
꽐라가 된 상태에서 아까 들렀던 레스토랑 취업계약서에 사인하고
그 이후로 계속 스발바르에서 이일저일하며 살고 있다나...
뭔가 MSG가 많이 들어간 스토리로 보이지만 그러려니 하자.
여하간 가이드는 이 얘기를 시작으로 이 곳만의 특이한 점들을 설명했다.

스발바르는 노르웨이 땅이긴 하지만
스발바르 조약의 영향을 받는 특수 지역이라서
(스발바르 전체가 면세지역인 이유도 이 조약 때문이다.)
고용주의 동의만 있으면 비자 없이도 취업할 수 있는 곳이다.
가이드가 직종을 바꿔가면서 몇년간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상당수의 태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대신 몇년을 일하든 영주권을 얻을 수는 없으며
또한 직업을 잃으면 반드시 스발바르를 떠나야한다.

또한 스발바르는 사람이 태어날 수도, 죽어서 묻힐 수도 없는 곳이다.
우선 제대로 된 병원이 없어서 출산하려면 비행기로 트롬쇠에 가야하고
같은 이유로 위중한 환자들도 이 곳들 떠나야한다.
혹여나 사고로 죽는다해도 대부분이 영구 동토라서 시체가 썩지도 않고
심지어 묻어둔 시체가 겨우내 빙하에 밀려 땅 위로 올라오기도 하기에
시신은 그 사람의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을에서 보이던 대형 파이프의 정체를 물어봤는데
지역 난방 온수파이프라고 한다.
왜 파이프가 굳이 밖으로 나와있나 했더니
어짜피 땅에 묻어도 자주 동파하는데
수리하려면 밖에 드러나 있는 것이 낫다는 게 이유였다.

아 그리고 워낙 사람 수가 적은 지역이라 사건사고도 드문데
최근 몇년간 가장 큰 사건은 2016년에 한 독일 훌리건이
(그리고 이로 인해 스발바르에서 영구추방 당했다고 한다)

참으로 평화로운 스발바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