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간의 비행 후 오슬로(Oslo) 공항에는 자정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오슬로 중앙역까지 와서 숙소 쪽 가는 트램을 기다리는데
4일만에 만난 어둠은 낯설었고 거기다 왠지 모를 두려움마져 안겨주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게 도시여서 느끼는 두려움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인생을 대도시에서 살았는데
불과 며칠의 백야 오지 생활이 도시 밤거리를 무서워하게 만들다니.
밤이라서 오슬로 패스 티켓을 못샀는데
하필 현금도 큰 단위의 돈 밖에 없다.
혹시나 트램에서 잔돈으로 바꿔줄까 싶었지만 그것도 안되는 상황.
우리가 어쩌지 하고 있으니
기사 아저씨가 다음에 탈 때 두 배로 내라며 그냥 태워준다.
가...감사합니다. ㅠㅠ
트램과 도보를 포함해 30분정도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
이번 숙소는 4층인데...역시나 엘레베이터가 없다. OTZ
안그래도 힘든데 오밤중에 다른 주민들 깰까 조심도 해야하고...
짐가방 두 개를 4층까지 옮기고 나니 죽을맛이다.
밤도 늦었으니 대충 정리한 뒤 얼른 씻고 잠이나 자자.
...
늦게 잔 만큼이나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식사를 했다.
정말 소형 밥솥은 이번 여행만으로도 제 값 이상을 하는 것 같다.
이거 덕분에 몇 끼를 해결하고 그 덕에 얼마를 아꼈는지 모르겠다
이제 오슬로 시내 구경을 다녀보자.
우선 트램을 타고 오슬로 중앙역으로 나가자.
트램 한 번 타는데 1인당 5천원 가까운(70 kr) 돈이 든다.
거기다 밤에 못냈던 거까지 두 배로 내니 이건 뭐......
얼른 관광안내소 가서 오슬로 패스부터 사야지 교통비로 거덜나겠다.
...
그런데 3일짜리 오슬로 패스 하나 가격이 745 kr. (약 104000 원)
아...그냥 한방에 거덜나냐 천천히 거덜나냐 차이였구나. OTZ
돈 10만원 들여서 산 티켓치고는 되게 부실하다.
그저 종이일 뿐인데다가 심지어 만료일도 내가 직접 기입하는 거고
교통수단을 탈 때에도 이걸 기사에게 보여주는 게 전부다.
뭐 시민사회의 상호 신뢰가 충분히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거겠지만
악용하는 관광객들도 은근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역 앞 광장으로 나오면 오슬로의 상징인 커다란 호랑이 동상이 보인다.
19세기 시인 비외른스티에르네 비외른손(Bjørnstjerne Bjørnson)의 시에서
위험한 도시를 호랑이로 묘사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후로 오슬로의 별칭이 호랑이 도시가 되었다나?
사실 호랑이는 유럽과 아무 상관 없는 동물이라 약간은 황당한 사연.
우선 중앙역에서 노르웨이 왕궁까지의 오슬로 중심가를 걸어보자.
오슬로의 인구는 70만이라 이 숫자로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들렀던 다른 노르웨이 도시들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현대적인 도시라는게 건물들만으로도 한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중심가를 걸으니 오가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상점가 골목들에는 커다란 테디베어 풍선들이 공중에 매달려있다.
풍선에 적힌 Hug life란 문구로 검색을 해보니
EGER 쇼핑몰 주관의 '즐거움, 온기, 관용의 전파' 주제로 한 전시인 듯 했다.
상점가의 끝에 있는 국회의사당에서부터 왕궁까지는 공원으로 되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이 엄중한 경비로 둘러싸여
실생활권과는 별개의 세상처럼 느껴지는게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 몇 번 본 모습이지만)
왕궁과 국회의사당이 혼잡한 시내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정면 멀찌감치 보이는 건물이 노르웨이 왕궁이다. 왼쪽은 국회의사당 |
이미 트론헤임에서도 경험했지만
위도와 상관없이 맑은 날씨의 오슬로도 뜨거운 기온을 자랑했다.
공원 옆 오펜트(Åpent) 베이커리에서 차가운 커피로 더위를 달래보자.
왕궁의 정원은 누구나 아무런 제재없이 들어갈 수 있고
왕궁 또한 여름철에는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한다.
다만 내부 관람을 위해서는 후문에서 티켓을 끊어야하고
정해진 시간에만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들어가볼 수 있다.
우선 오늘은 왕궁에 가볼 생각이 없으니 공원을 질러가자.
천천히 구경하며 왕궁을 가로지른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숙소 주인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인 FYR Bistronomi로 향했다.
립과 감자튀김 그리고 생굴을 시켰는데 515 kr(약 72000원).
먹는 양 적은 우리니까 이 정도지
보통 다른 사람들이면 10만원 치는 시켜야 겨우 부족하지는 않을 정도다.
2주 넘게 경험했으면서도 여전히 절레절레하게 만드는 물가지만
그래도 오늘 들른 레스토랑의 요리는 엄지 척.
특히나 굴은 라임향 가득한 새콤한 소스가 비린내는 싹 잡아주면서도
굴 특유의 바닷내와 어우러져서 우리 둘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마리당 만원꼴의 가격만 아니면 더 시켜먹고 싶은 마음.
식사를 했으니 다시 관광을 해야지.
트램을 타고 아케르후스(Akershus) 요새쪽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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