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30일 월요일

Jin과 Rage의 Malta & Istanbul 여행기 - 20171225 (2) : Malta에도 정의가 함께하기를

아쉽게도 문을 닫은 마노엘 극장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데
바로 옆에 성당이 있어 들여다봤다.
몰타는 단위 면적당 성당 개수가 가장 많은 나라인데
별로 크지도 않은 발레타 안에만도 15개가 넘는 성당이 있다.
몇 분 걸을 때 마다 성당 하나를 만날 수 있는 정도.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지라 자세히 안봤으면 성당인줄 몰랐을 거다

성당의 이름은 가르멜 산의 성모 성당.
(Santwarju Bażilika Madonna tal-Karmnu /
Basilica of Our Lady of Mount Carmel)
여기서 가르멜 산의 성모는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열려 있는 정문으로 향하던 중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우리는 몇몇 관광객들이 보고 있는 것이
보수 공사중이라 휑한 성당 내부였음을 알게 되었다. -_-;


타원형 돔 성당은 처음 보게 되네


다만 여기도 보다시피...


내부 공사중인 것은 매한가지 OTZ

그래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도 잠시 들여다볼까?
이전에 본 적 없는 타원형의 돔 지붕이 특이하다.
성화와 제단등에 죄다 막이 쳐져 있어서
원래 모습은 상상으로 추측할 수 밖에 없겠군.

(볼만한 것이 없으니 당연하게도) 잠시만 돌아보고 밖으로 나서려는데
문 근처에 테이블을 펴고 앉아계신 아주머님이 있다.
보아하니 수리 기부금을 받고 계시는 것 같아서 둘이서 2€ 기부.
그랬더니 그냥 안보내시고 성화 옷핀 2개를 주신다.



어짜피 이 부근에서의 관광은 그른 것 같으니
발레타 중심의 리퍼블릭 광장(Misraħ ir-Repubblika)으로 가자.


저녁이 기대되는 리퍼블릭 거리(Triq ir-Repubblika)의 조명들


국립 도서관 앞 리퍼블릭 광장은 언제나 노천카페 자리로 문전성시

리퍼블릭 광장을 지나 바로 옆에 있는 성 요한 대성당으로 가던 중
한 동상 앞의 분위기가 남달리 숙연하다.
450년 전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몰타를 지켜낸 것을 기념하는
몰타 공방전 기념비(Great Siege Monument) 앞은
추모하는 의미의 꽃과 초, 그리고 결연한 의지의 메시지들이 놓여있다.
모두 작년 10월 16일에 (원격 조종된) 차량 폭발로 암살당한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Daphne Caruana Galizia) 기자에 대한 것.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몰타를 지켜낸 사람들 만큼이나
그녀와 추모객들은 부정부패로부터 몰타를 지키고 싶을 것이다

몰타의 부패한 정치인들에 대한 폭로로 유명했던 그녀는
비록 끔찍한 사건으로 최후를 맞이했지만
이 사건이 부디 몰타의 올바른 미래를 만들려는 이들에게
그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기를 나또한 바래본다.
우리도 불과 1년전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서지 않았던가.

또다른 편에는 교황 비오 5세(San Piju Ⅴ Papa)의 동상이 있다.
그는 오스만 제국에 맞서기 위한 신성 동맹 결성에 큰 기여를 했고
몰타 요새 건축에 지원을 했었기에 몰타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됐다.



코너를 돌아 성 요한 대성당 정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문 옆에 안내판에 오늘은 미사가 계속된다고 되어있다.
맞다, 오늘 크리스마스지...이래저래 오늘 발레타 관광은 참 힘드네.
그래도 문 앞에서 미사 관람은 가능하다고 하니
안으로 한 발 들어가 잠시 미사를 구경해보자.
10분 정도 미사를 구경하는데 화려한 성당 내부의 일부가 눈에 띈다.
내일 다시 찾아와서 제대로 구경해야지.


겉은 너무나도 수수한 성 요한 대성당.
하지만 다음날 반전이 너무나도 대단했으니...

이래저래 쉽지 않은 오늘 관광의 다음 순서는 어퍼 바라카 정원.
(Il-Barrakka ta' Fuq / Upper Barrakka Gardens)
매일 12시에 예포를 쏘는 것으로 유명한데 지금은 시각은 11시.
미리 가서 좀 앉아 쉬고 있다가 구경하면 되겠군.

어퍼 바라카 정원 입구 근처에 도착했는데
너무나도 눈에 익은 카페 간판, 파스쿠치가 보인다.


우리가 아는 그 파스쿠치 맞다

설마 우리가 아는 그 카페 파스쿠치일까 싶었는데
의심을 하기에는 가게 간판 폰트가 너무나도 똑같다.
그래서 찾아보니...이거 이탈리아 프렌차이즈였구나. -o-;;;


어퍼 바라카 정원 입구


어퍼 바라카 정원

어퍼 바라카 정원의 원래 목적은
(현재 몰타 기사단의 기원인) 성 요한 구호기사단의 휴식 공간이었다.
즉 이 곳은 원래 병영 막사(Barrack)였다는 얘기.
발레타 내에는 어퍼 바라카 정원과 함께 같은 역할을 했던
로어 바라카 정원(Lower Barrakka Gardens)도 있다.

관광객들이 어퍼 바라카 가든을 찾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전망.
맞은편의 쓰리 시티즈(Three Cities)를 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맞은편의 요새 하나하나가 각각 도시들이다.
비토리오사, 셍글레아, 코스피쿠아(Vittoriosa, Senglea, Cospicua)

이제 12시가 되기를 기다리자.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Jin과 Rage의 Malta & Istanbul 여행기 - 20171225 (1) : 아이보리 라임스톤과 알록달록 발코니의 조화

일찍 잠든 탓에 일찍 일어난 아내가 아침 산책을 하자며 깨운다.
어짜피 좀 있으면 아침 식사도 해야 되니 일어나볼까?

숙소앞 아침 풍경

온통 아이보리 색인 라임스톤 건물들과 바다/하늘의 대비,
그리고 현대의 아파트들과 고전 양식 건물들의 대조가
몰타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스탄불보다 낫다곤 해도 꽤 춥네. -_-; 철수~

아침 식사는 치즈, 햄, 토스트, 시리얼과 과일 몇가지.
최소한 아침 식사는 어제 이스탄불에서의 식사가 그립군.


아내는 나를 깨우기 전 새벽에 혼자 일어나서
이스탄불에서 그리던 블루모스크 스케치를 끝냈단다.
(화가의 손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젬병인 나로서는
불과 3~4시간만에 이런 스케치를 그린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식사를 마쳤으니 이제는 관광을 시작해야지.
우선 발레타(Valletta) 방향으로 가볼까?

길을 얼마 걷지 않아 만난 오르막길에 인쇄된 문구가 보인다.
195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부중 한 명인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의 시 'Howl'의 첫 구절.
유럽의 난민 사태로 인한 혼란에서부터
몰타의 정치적 비리를 취재하다가 사망한 여기자 사건까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우리 세대 최고의 지성들이 광기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보았다

우선 첫번째 목적지는 로만 배스(Roman Baths).
버스를 탈까 싶었지만 이 동네 버스가 자주 안다니니까
그냥 20분 거리 정도는 걸어서 가자.

공원 내 건물 위에 알록달록한 고양이가 귀여워서 찰칵

산 질리안 탑(Torri ta' San Ġiljan)을 지나 코너를 도니
길게 뻗은 해안 끄트머리에 로만 배스가 보이는 듯 하다.

조금만 더 걸어가자

드디어 도착한 로만 배스.
몰타는 섬나라지만 모래사장이 거의 없고
절벽이나 돌로 된 해안이 거의 대부분이라서
이 돌을 풀장처럼 깎아서 해수욕을 즐겼다고 한다.
이게 로마 시대부터 이용한 것이라서 로만 배스라나?




여름에 왔으면 우리도 여기서 해수욕도 즐겨봤겠지만
지금은 겨울이니 잠시 둘러만 보고 가자.
하긴 여름엔 북적대서 자리도 없으려나?

로만 배스를 잠시 둘러본 후 이번엔 페리 터미널로 향했다.
번잡한 슬리에마(Sliema)를 가로질러 걸어서 15분.
페리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바로 맞은편으로 가면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 도착하게 된다.


맞은편에 보이는 발레타.
배로 불과 10분이면 가지만 버스는 돌아가서 20분 정도 걸린다


슬리에마와 발레타 사이에 있는 마노엘(Manoel) 섬의 마노엘 요새

발레타 페리 터미널에서 내려 성벽을 올라가자.
몰타에서 도시(City)의 영역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것과 달리
하나의 성으로 둘러싸인(혹은 그럴 정도의) 크기이다.
수도인 발레타의 넓이는 불과 0.8㎢, 서울 명동(1㎢)보다도 좁다.







전형적인 발레타의 주택가 모습들

성벽을 올라온 후 바로 발레타의 주택가를 만났다.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은 아이보리 색의 라임스톤 건물들마다
어김없이 튀어나온 갖가지 색의 발코니들이 인상적이다.
창으로 둘러 싸여 닫혀있는 형식의 몰타식 발코니는
그 기원에 대해서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형식에 관해서는 북아프리카 모로코나 오스만 제국 등의
이슬람 문화권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고
그저 궁전에서 비가 들이치는게 싫어 폐쇄형 발코니를 만들었더니
다들 따라 만들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또한 지금처럼 모든 건물들에 빠짐없이 있는 이유로
영국 식민지 시절에 목재와 페인트가 저렴하게 수입되면
너도나도 유행처럼 발코니를 지었다고도 한다.
어쨋건 이 발코니는 발레타에 온 여행객의 첫 눈길을 끄는 대상이다.

좁은 골목들을 지나  마노엘 극장 앞에 도착했다.
마노엘 극장의 역사는 280년이 넘었는데
현재 운영중인 극장 중 세번째로 오래된 극장,
영연방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그런데...


굳게 닫힌 마노엘 극장

우리는 왜 하필 내부 수리중일 때 왔는가...

발레타 관광 시작부터 '인생은 시트콤' 모드.
마노엘 극장은 내부 수리로 인해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아이고...

2018년 4월 22일 일요일

Jin과 Rage의 Malta & Istanbul 여행기 - 20171224 (4) : Where are you from, Salif?

들어왔던 입구와는 다른 문을 통해서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벗어났다.
이스탄불 대학과 모스크 사이 길을 좀 걷다보니
하나둘씩 상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어느새 우리는 본격적인 재래시장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 중 하나인
카팔르 차르슈(Kapalı Çarşı), 일명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
그랜드 바자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계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기도 하다.




1461년이라고 적혀있다. 무려 550년의 역사

워낙에나 큰 시장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시간도 많지않다보니
천천히 구경할 여유 없이 그냥 지나쳐야 했다.
워낙 큰 시장이니 구역별로 모습이 많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통과한 구역의 모습은
관광객 상대가 주인 듯하던 므스르 차르슈에 비해
현지인 생활용품 시장의 느낌이 많이 나서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계속해서 걷다보니 목이 마르다. 마침 주스 가게도 눈에 보이네.
아저씨 사과 주스 하나요~


보기는 화려했지만 철이 아니라 그런지 사과도 맛은 그닥...
전날 마신 석류 주스도 별로였는데. 쩝

주스 마시며 좀 쉬었으니 다시 힘내서 호텔로 가자.
(쉴레이마니 모스크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

호텔에 가서 맡겨뒀던 짐을 찾고 나섰다.
아참, 여러가지로 친절했던 호텔측에 감사 인사 남겨야지.
이번 여행에서 만나는 인연들에게 주기 위해서
한국식 문양의 책갈피와 노리개들을 들고왔었기에
숙소 주인에게 책갈피 하나를 드렸다.
이제 진짜 이스탄불을 떠날 시각.
단 하루였지만 즐거웠고 인상깊었던 도시,
다음에도 꼭 다시 들르고 싶은 이스탄불을 뒤로하자.

공항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걷는데
갑자기 웬 터키 청년이 말을 걸더니
이스탄불이 맘에 드는지, 온지는 몇일이나 됐는지 물어본다.
너무나 좋고 하루밖에 안있었지만 아쉽게도 지금 몰타로 간다고 했더니
몰타가 멋진 곳이고 옛날에 (자기네) 오스만 제국의 땅이었다고 했다.
흠...(속으로만) 내 생각엔 네가 역사 공부 다시 해야할 거 같은데.
(몰타는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적이 없다.)
여하간, 그는 우리에게 즐거운 여행 되라며 손을 흔들어줬다.
외국인한테 그냥 부려본 오지랍이었을까,
아니면 실패한 삐끼질이었을까?

2시간 반의 비행 후 도착한 몰타 국제 공항.
국제선 승객이 가장 많은 10개 공항에 꼽히는
인천과 아타튀르크 공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강화도보다 조금 큰 크기와
불과 인구 40만명인 몰타의 공항은
게이트는 커녕 걸어서 입장할 정도의 아담한 크기였다.


아담한 몰타 국제 공항


게이트는 커녕 버스도 없다

이제 숙소가 있는 산 질리안(San Ġiljan / St. Julians)에 가자.
택시로 가면 15분에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이곳 저곳 들르며 돌아가는 버스 덕에 40분이나 걸렸다.
버스에서 내리고나니 도착한 곳은 어두컴컴한 길가.
불과 몇시간 전에 이스탄불에서의 북적임을 보다가
이토록 어둡고 조용한 동네로 오니 어색한 느낌이다.
그래도 좀 불빛이 많은 바닷가로 나와 숙소로 걸어가자.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15분.
쌀쌀하지만 이스탄불보다는 덜한 몰타의 기온 덕에
그래도 걸어가는 길이 많이 춥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산 질리안의 흔한 풍경 

좀 전까지 있던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는
'크리스마스 그게 뭔가염'의 분위기였던 반면에
몰타는 카톨릭 국가인지라 곳곳의 트리와 장식들이 우리를 반겼다.
역시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이윽고 도착한 오늘의 숙소는 인하위(Inhawi) 호스텔.
1박에 1인당 16.5€의 저렴한 가격과 9점대의 평점을 보고 예약했었다.
평점이 좋기는 해도 저렴한 호스텔이니 큰 기대는 말아야지 했었다만...
오...상당히 깔끔한데?
별다른 장식 없는 베이지색 라임스톤 건물은
시원하면서도 잡티 없이 깨끗한 느낌이 들어서 맘에 들었다.
우리 방은 2층 침대 4개가 있는 8인실.

방을 안내받고 짐을 풀고 있으니 내 침대 위의 흑인이 인사를 건넨다.
감비아에서 왔다는 살리프는 여기서 무려 1달째 지내는 중.
아마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라인 출신인지라 그런지
감비아가 어디 있는지 아냐고 싱긋 웃으며 물어보는 그에게
서아프리카쪽 아니냐고 말하니까 어떻게 아냐고 오히려 신기해한다.
세계 지도 덕후라서 그렇다는걸 얘기하기 어려워 대충 넘어갔다만...

좀 있으니 또 동양인 여자 두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광저우 출신 중국인과 대만 출신인 두 친구는
지금은 유럽에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살다가 같이 여행하러 왔다고 한다.
중국인 쪽은 한국 광주에서 유학한 적도 있어서
광주(광저우의 한국식 발음)에서 광주로 유학간 재밌는 인연도 있더라.

(그렇게 하고는 싶지만)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말을 못붙이는 우리에게
호스텔은 어느정도의 로망이 실현되는 공간.
그나저나 우리는 저녁을 먹어야지.
그런데 시각은 이미 9시를 넘었고
숙소 오던 중에도 레스토랑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역시나 주변을 좀 다녀봤지만 갈 만한 곳이 없다.
뭐...피곤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프지도 않으니
호스텔의 자판기에서 파는 코코아와 과자로 때우자.


지나가다가 슬쩍 들여다본 숙소 앞 성당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심야 미사가 진행중이었다

호스텔 공용 공간에 앉아서 잠깐 얘기하는데
아까 인사 나눴던 살리프가 "How you doing?"하고 말을 건냈다.
그런데 아내가 그를 못알아보고
"Fine.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말했다.
살리프는 껄껄거리며 아까 얘기했잖아~하고 아내를 놀렸고
아내는 그제서야 그가 살리프임을 알고는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여행 에피소드가 생기는구나. ㅋ

아내는 시차를 이겨내기 힘들었는지 금새 잠이 들었다.
나도 얼른 꿈나라로 가야지.
이제 내일부터 이번 여행의 본편인 몰타 편 시작~

2018년 4월 15일 일요일

Jin과 Rage의 Malta & Istanbul 여행기 - 20171224 (3) : 위대한 술탄의 소박한 영묘

므스르 차르슈에서 나와 오르막길 방향으로 10여분 걸어서
언덕 정상의 쉴레이마니예 모스크(Süleymaniye Camii)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예배가 한창 진행중.
끝나기까지는 40분 정도 남았네.
그때까지 모스크 주변 구경이나 하며 기다리자.


갈라타 다리와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모스크에서의 예절을 지키고 있는 아내

모스크 외곽을 따라 걷던 중 만난 표지판이
쉴레이만 대제(Süleyman the Magnificent)의 영묘 존재를 알려줬다.
모스크의 정원 한쪽편에 공동묘지와 같이 있는 건물이 그것.




묘비들 뒤편에 보이는 건물이 쉴레이만 대제의 영묘

쉴레이만 대제는 수많은 정복 전쟁을 직접 이끌어 승리하면서도
입법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법률의 정비에도 많은 신경을 썼고
문화적으로도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데다가
본인이 많은 시도 직접 지었던 대단한 인물이다.
그의 살아생전이 오스만 제국 최전성기로 꼽히는 것은 당연한 일.


가운데의 묘가 쉴레이만 대제의 묘

하지만 그렇게 손꼽히는 명군의 영묘라고 하기에는
어찌보면 초라해보이기도 하는 건물에
심지어 단독으로 매장 된 것도 아니고 아내와 딸,
그리고 훨씬 뒷시기의 다른 술탄들 관까지 같이 합장되어있었다.
이슬람의 병적인 우상 숭배금지가 묘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 걸까?

어느새 입장 가능한 시간이 되었다. 이제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보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 모스크는
앞서 봤던 영묘의 주인 쉴레이만 대제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아야소피아 닮은 모스크 건축을 명받은 미마르 시난(Mimar Sinan)은
오스만 제국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건축가로 꼽히는데
돔과 미너렛을 특징으로 하는 오스만 양식의 모스크를 완성한 인물로
터키와 동유럽 곳곳의 수백여가지 건축물들이
그와 그의 제자들의 지휘하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타지마할도 그의 제자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는 이러한 미마르 시난의 대표작품 중 하나.


술탄 아흐멧 모스크에 비하면 훨씬 밝은 내부

술탄 아흐멧 모스크처럼 장식들이 빼곡하진 않은 대신에
깔끔한 대리석 벽이 크림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전날 화려하고 압도적인 크기의 술탄 아흐멧 모스크를 봐서일까?
위압감이 들 정도였던 앞서의 두 건축물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물론 1000년 차이나는 아야소피아보다도 조금 작은 크기의 돔이지만
(미마르 시난은 결국 이후에 지은 셀리미예 모스크에서
아야소피아와 동일한 크기의 돔을 건설했다)
왕명으로 지어진 모스크인 만큼 당시 최고의 기술이 동원됐을 터.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야소피아의 대단함을 알 수 있다.)

대신, 하얀 색의 벽이 시원하거나 찬 느낌을 주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이곳은 마치 크림같다고 할까? 고급스러우면서도 편안하며 느낌.
전체적으로 귀족 부인을 연상시키는 수려함이 돋보인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미마르 시난 자신이 걸작으로 꼽은
셀리미예 모스크도 방문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안팍으로 보여지는 순백의 아름다움은
우리에겐 술탄 아흐멧 모스크보다 한 수 위였다

시간이 오후 2시가 되어간다.
이제 숙소에 맡겨둔 짐을 가지고 공항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