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30일 토요일

Jin과 Rage의 Sri Lanka 여행기 - 20160102 (3) : 사자 바위 정상에서 느끼는 새옹지마

바위 위로 오르기 위한 계단을 걷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산이지 가파른 절벽을 오르기 위한 계단이라서
위로 올려다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무더운 기온에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려니 금새 땀 범벅이 되었다.
걸어 오른지 10여분 지나 만난 쉼터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파노라마 한 컷.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숲이 장관이다.


불과 10여분 올라왔지만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조금 덜어 줬다

잠깐의 휴식 후 다시 출발.
잠시 걸으니 원통형 계단을 만났다.
이곳을 오르면 이곳을 유명하게 한 벽화
'시기리야의 숙녀들 (The Sigiriya Ladies)'을 관람할 수 있다.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미술 작품이니 지나칠 수 없지.

[wikipedia.org 펌] 절벽 가운데 검은 차양막으로 가려진 곳이
벽화가 그려진 곳이다

벽화가 있는 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눈으로만 관람하고
벽화는 sigiriya.org에서 퍼온 사진으로 대신한다.

[sigiriya.org 펌]

[sigiriya.org 펌]

그림이 아름다운 것도 대단하지만
1500년 전에 어떻게 이런 절벽에 그림을 그렸는지 자체가 신기하다.
원래는 500여명이 그려져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8명이 전부.
더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햇빛에 바래지 않도록
검은 천으로 가려둔 듯 하다.

벽화를 구경한 후 다시 원통형 계단을 통해 원래 길로 내려왔다.
벽화의 아래에는 거울벽(Mirror wall)이라고 불리는 회벽이 있는데
달걀 흰자, 꿀, 석회를 이겨서 칠한 이 벽에는
여러 서사시들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벽에 새겨진 시들은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거울벽. 뭐가 새겨져 있기는 한데 희미해서 보이질 않는다

계속해서 걸어 올라 출발한지 30분만에
왕궁 입구인 사자문(Lion gate) 앞에 도착했다.
(시기리야의 의미가 '사자 바위'다.)


사자문. 아직도 올라갈 가파른 계단이 눈앞에 보인다


크릉~ (-_-;;;)

지금은 거대한 앞발 모양 조각만 남았지만
예전에는 사자 입을 통해서 들어가는 형태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hannatravels.com 펌] 예전 모습에 대한 상상도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른 올라가자.
사자문에서 5분만 걸으면 정상이다.


사자 바위 정상에 도착했다

사자 바위 정상에 오르니
밑에서 봤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커다란 왕궁터가 나타났다.
가파른 바위 산 위에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왕궁 터는
마치 마추픽추를 연상하게 했다.


평지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보니 먼 곳까지 내다보인다


아까 들렀던 사원의 불상이 조그맣게 보인다


사방이 훤하게 트인 고지대라 그런지 바람이 거세다
그래서 눈도 제대로 못뜨고 있는 아내님


시기리야의 왕궁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곳에 지어진 것인지는
항공사진을 보면 잘 느낄 수 있다.


[www.pearlceylon.com 펌] 비행기로 폭격하지 않는 한 난공불락일 듯

이런 곳에 왕궁이 만들어진 사유는
스리랑카 최고의 광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카샤파(Kashyapa) 왕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곳에 왕궁을 지은게 정상인일 거 같지는 않다. -_-)
장남이지만 서자로 태어난 카샤파 왕은
적자인 동생 모갈라나(Moggallana)가 왕위를 물려받을 것을 시기하여
아버지인 다투세나(Dhatusena) 왕을 시해하였다.
하지만 이 때 모갈라나가 피신하여 인도로 망명하자
동생이 복수하러 돌아올 것을 염려한 카샤파 왕은
절대 함락되지 않을 듯한 이 곳으로 왕궁을 옮겼다.
하지만 인도에서 병력을 얻어서 돌아온 모갈라나에게
카샤파 왕의 군대는 무너졌고
그는 자결로 18년의 통치 기간을 마감하였다.

동생의 복수가 두려워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위해 지은 곳에

1500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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