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스발바르 도착하던 날 여러차례 착륙시도를 했던 얘기를 꺼내자
가이드는 그 때 밑에서 제발 좀 착륙하라고 애원하고 있었단다.
가이드만 하는게 아니라 공항 택시 기사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
더군다나 그 때가 새벽 4시가 넘은 시각이었으니
얼른 마치고 집에가서 자고 싶었을 그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 말을 재현할 때 그의 제스쳐가 어찌나 절실하던지... ㅋ)
아 그리고 오늘 너무나도 깨끗하게 갠 날씨 얘기를 하니까
이런 날이 일년에 몇일 안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제 떠나려니 겨우 맑아지냐고 불평을 했지만
알고보니 이 곳에서 이런 날씨를 보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던 거다.
이런 때 아내와 둘이서 하는 얘기로
우리 반려견이었던 푸메가 하늘에서 구름 쫓아냈나보다 하는데
뭐가 되었건 고마워하는 맘으로 오늘 날씨를 대해야겠다.
우리가 다닌 투어가 매우 심심해 보이긴 한데
배를 타고 근교의 폐광마을인 피라미덴(Pyramiden)을 들르거나
바다코끼리나 북극곰같은 야생동물을 찾아가는 것들도 있으니
스발바르 투어가 죄다 우리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도 예약이 다 차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다.
뭐 그래도 그 덕에 재미난 콜롬비아인 가이드를 만났다만. ㅋ
다시 차를 타고 마을 중심가로 돌아왔다.
저녁에 오슬로로 갈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점심 먹을 가게도 찾을 겸 마을을 어슬렁거려 본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선택은 이틀 전에 들렀던 프루에네(Fruene).
저번에는 후식만 먹고 갔지만 이번엔 식사를 하자.
이틀 전에 커피와 케익을 먹으면서도 괜찮다 싶었는데
오늘의 식사용 음식들도 훌륭하네.
식당이라기보다는 카페에 가까운 가게지만
어쨋건 훌륭한 음식들로 배를 채울 수 있었으니 무슨 상관인가.
뭐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기왕 스발바르까지 왔는데
순록고기 요리가 있는 레스토랑은 가볼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점심 식사도 마쳤지만 오늘 밤 비행기 타기 전까지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우선 (이미 체크아웃한) 숙소로 간 다음 로비에서 쉬자.
로비 벤치에 앉아서 뒹굴거리며 졸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오슬로 정보도 찾아보고
아내는 스발바르 브루어리 맥주도 마지막으로 즐겼다.
한참동안 숙소 로비에서 시간을 보낸 후
아직 비행기 시간은 이르긴 해도 공항가는 버스를 탔다.
이미 알다시피 공항까지는 차로 15분.
복잡할 것도 없는 공항이니 체크인까지도 금방이다.
그러다보니 게이트 앞에서 다시 무료한 시간을 한참 보내야겠다.
정말 여태껏 여행중 언제 이래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스발바르에서 보낸 3일 내내 무료하고도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 무료함이 싫지 않은 것은 스발바르이기 때문 아닐까?
저녁식사도 공항내 매점에서 간단하게 해결하며 기다린 끝에
드디어 오슬로(Oslo)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시각이 되었다.
무료한 기다림이 끝나서인지 장난기가 발동해서 목베개로 장난을 좀 쳐본다.
이제 다시 밤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주었던 백야의 스발바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