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 일찍 베르겐을 떠날 테니)
베르겐에서의 마지막 커피 한잔이나 할까?
아내가 찾아뒀던 카페 중, 여러 블로그에서 최고의 카페로 꼽았던
뎃릴레 카페(Det Lille Kaffe Kompaniet)로 가자.
주말 뎃릴레 카페의 영업종료가 6시인데
이미 5시 반이라 서둘러 가야겠다.
아슬아슬하게 영업 종료 전 도착한 뎃릴레 카페는
아침에 왔던 푸니쿨라 역 뒤편의 조용한 민가 골목 안에 있었다.
영업시간이 끝날 때도 되었지만 실내에 앉을 공간도 얼마 없어서
그냥 주문한 (가장 인기있다는) 카푸치노를 받아서 밖으로 나왔다.
골목이 예쁘다보니 바깥 벤치도 제법 운치 있다만
밖은 밖대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해 약간은 난감한 상황.
그래도 잠깐이나마 이 운치를 즐겨보자.
깊고도 부드러운 맛의 카푸치노는 명불허전.
거기다 온기로 으슬으슬한 기온도 쫓아내니 좋구나.
커피를 들고 장을 보러 가다가
아까 물병 실로폰 악사가 있던 자리 근처에서
많은 장미꽃들과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인쇄된 종이룰 발견했다.
어떤 것인지 궁금해져 가서 살펴보니
7년전 오늘 있었던 극우 테러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내용이다.
2011년 7월 22일 오슬로와 그 근교의 섬 우퇴위아(Utøya)에서
단 한 명의 극우 범죄자로 인해 76명이 사망했던 그 사건.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노르웨이의 대응은
추도식에서 당시 노르웨이 총리의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과 더 많은 인간애다."
9년 연속 민주주의 지수 세계 1위를 차지한 나라여서 그런 것일까?
100% 동의를 하기는 어렵지만
정말로 깊은 울림을 주는 말이다.
(노르웨이의 법에는 최고형이 21년형이기에
이 범인은 수십명을 학살했음에도 2033년에 출소한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
물론 노르웨이 내에서도 이에 대해 여러 다른 의견은 존재한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플롬(Flåm)에서 묵을 숙소에 확정 메일을 보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베르겐까지의 여정만 예약한 상태였기에
이제부터는 그때그때 이동편과 숙소를 예약해야하는 상황.
그래도 어떻게든 잠 잘 곳은 구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성수기인 탓인지 대부분의 숙소 예매 사이트에서는
숙소가 만실이라서 예약할 수가 없었다.
결국 구글 지도에서 찾은 캠핑장들에 일일이 메일로 문의를 해서야
겨우 숙박 가능한 캠핑장을 구할 수 있었다.
우선 당장 플롬의 숙소는 구했다만
그 다음 플롬에서 게이랑에르(Geiranger)까지 가는 교통편과
게이랑에르에서의 숙소도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
이제 매일 저녁은 다음 일정을 찾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
저녁식사를 요리해서 먹고 다시 베르겐 항구 쪽으로 나섰다.
며칠전 너무 늦은 시간에 들러서 구경하지 못했던
브뤼겐(Bryggen) 지구의 한자(Hansa) 마을로 가볼 생각이다.
이 부근 바다의 주요 산물인 대구를 조각한 거대한 목상 |
9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보슬비도 오기 때문인지
백야로 인해 여전히 밝은 바깥이지만
한자 마을 안은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간간이 회벽 건물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낡은 목조 건물들.
그리고 목조 건물이다보니 아무래도 화재에 취약해서
사실 현재의 건물들도 이래저래 많은 복원을 거친 것들이다.
대체로는 평범한 박스형의 건물들이지만
간간이 고층의 독특하게 튀어나온 구조물들이 눈에 띈다.
한자 마을을 둘러본 다음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 아쉬웠던 우리는
근처의 베르겐후스(Bergenhus) 요새로 향했다.
지금은 아름다운 경광의 공원 |
과거, 요새였음을 알려주는 흔적 |
호콘 홀(Haakon Hall) |
요새 내에 있는 박물관 |
13세기에 만들어진 항구 앞의 요새는
이전에는 왕의 거처이기도 했었는데
17세기에 있었던 보겐(Vågen) 전투 외에는 아무런 분쟁도 없던 곳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 전투 마저도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전투에
덴마크는(당시에 노르웨이는 덴마크 지배 하에 있었다) 거들었을 뿐.
당시 잉글랜드 측에서 덴마크에 협조를 구했는데
이 내용이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보니
이 요새에서는 엄하게 잉글랜드 군에 집중 포격을 했고
결국 잉글랜드 군은 네덜란드 선단에 제대로 공격도 못하고 패퇴했다.
이제 밤 10시도 넘었고 내일은 아침 일찍 기차를 타야하니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잠을 청해야겠다.
베르겐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