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는 성당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급해서 지나쳤지만
길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 사진 한 장이라도 찍고 가고 싶었다.
강한 바람 탓인지 가로수들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
멀리 보이는 시타델. 내일 가봐야지 |
여행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렇게 발걸음을 멈추고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할 텐데...
다시 원래 가려던 길을 가자.
아까와는 다르게 빅토리아(Victoria) 시내를 지나가다보니
차도 여럿 보이고 길도 조금 막히긴 한다만
몇 분 지나서 빅토리아를 조금만 벗어나면 다시 한적한 시골길.
총 30분 정도 걸려서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다.
차로 더 들어갈 수는 있는 것 같지만
좁은 길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으니
우리도 차에서 내려 걸어가보자.
이제부터는 걸어가봅시다 |
람라 만(Ramla bay)의 좌우 언덕에는 동굴이 하나씩 있는데
서쪽의 칼립소 동굴(Calypso cave)과
우리가 찾아간 동쪽의 탈-미쉬타 동굴(Tal-Mixta cave)이 그것.
칼립소 동굴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도 등장하는데
오기기아 섬에서 칼립소에게 붙잡힌 오디세이가 7년간 머무른 곳이
바로 이 동굴이라나 뭐라나. (즉, 오기기아 섬이 고조 섬이란 얘기다.)
하지만 칼립소 동굴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지가 않으므로
우리는 탈-미쉬타 동굴로 가기로 했다.
게다가 탈-미쉬타 동굴이 서향이기 때문에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구경하기 더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길의 끝에 도착해서도 언뜻 보기에는 동굴이 없어 보였지만
좀 더 가보니 땅 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좁은 통로를 지나 내려가니 넓은 공간이 나왔고
그 앞쪽으로 해가 져가는 람라 해변이 보인다.
몰타에서는 흔치않은 모래해변인 람라 해변은
나폴레옹이 몰타를 정복하러 왔을 때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모래해변이 때에 따라 침략의 관문으로 바뀌는 아이러니.
짜잔~ |
아름다운 해변과 석양을 감상하는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고
차로 돌아가기 위해 뒤로 돌아서는 순간
들어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휴양철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여기가 칼립소 동굴이면 오디세우스가 지냈던 흔적이라는 드립이라도 칠텐데... |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잠깐 쉬었다가 저녁 먹을 때 다시 나오자.
저녁 6시가 되어 식사하러 숙소 근처 동네로 걸어나갔다.
해가 진 후의 나두르 거리는 가로등도 많지 않아서 꽤나 어둡다.
소박한 매력의 나두르 밤 거리 |
숙소에서 나오기 전에 찾아봤던 근처 가게들을 하나 둘씩 들러보는데
왜 하나같이 다들 문을 열지 않은 거냐.
와중에 비도 추적추적 내려 기분을 처지게 한다.
결국 이 동네에서 도저히 문을 연 식당을 찾을 수 없었던 우리는
차로 임자르 항구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가기로 했다.
운전해서 가는 중 만나는 차마다 나한테 상향등을 깜박인다.
뭐지? 싶어 살짝 불쾌했는데...아차, 상향등을 내가 키고 있었군. -_-;
내가 상향등을 켰다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레버의 표시를 다시 보니 한국의 차들과는 약간 다르다.
운전 방향만 신경썼지 이런게 다를 줄은 생각도 못했네.
나와 마주쳐간 운전자 분들, 죄송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_-;;;
임자르 항구 근처로 차를 몰고 오니 길이 꽤 막힌다.
알고보니 대부분은 몰타로 돌아가는 페리에 선적하려는 차들.
통제중이던 경찰이 행선지를 물어봐서 레스토랑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잠시 맞은편에서 차가 오지 않을 때 추월해서 갈 수 있도록 해줬다.
비 오는데 고생들 많으십니다.
몇몇 항구 앞의 레스토랑들도 문을 닫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는 많은 수가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Tmun 레스토랑.
항구 근처의 식당답게 해산물 요리 전문이라서
생굴과 새우튀김, 청새치 구이와 오징어 요리로 주문 완료.
고조 섬의 식당들에서 재밌었던 점은 주문하지 않은 식전 사이드 디쉬 하나가 항상 별도로 나왔다는 것. 이 날 저녁에는 미니 햄버거가 깜짝 등장했다 |
신선한 지중해 생굴 |
언제나 안정적으로 맛있음이 보장되는 새우튀김 |
(아시아 스타일이라지만) 의외로 꽤 매콤했던 오징어 요리와 고소함은 좋았지만 너무 부드러운 식감이 아쉬웠던 청새치 구이 |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플레이팅과 맛 모두 준수해서 만족스러웠던 식사.
덕분에 비맞으며 식당찾아 삼만리하던 우울한 기분이 치유되었다.
뭐, 식사비가 원래 예상보다 많이 들긴 했지만
맛있는 거 '먹는데 드는 돈은 아까워 하지 말자'가 우리 신조 아니더냐.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내일 계획을 정리해볼까?
그런데 아내는 오늘도 시차를 못이기고 9시가 넘으니 졸려한다.
그래 딱히 밤에 할 것도 없는데 계속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지 뭐.
아, 그나저나 한국의 온돌 난방이 그립다.
온통 차가운 돌로 둘러싸인 방에 조그만 라디에이터 하나 뿐이라
따뜻해지는 느낌이라고는 1도 없네.
아무리 세게 틀어도 아무 의미가 없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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