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레인과 아랍 스트리트 구경을 마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래플스(Raffles) 호텔 앞에서 내렸다.
싱가포르의 개척자인 토머스 스탬포드 래플스의 이름을 따온 이 호텔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식민지 시대의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건물.
2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곳으로, 2차 세계대전때 큰 피해를 입었으나
쌍용건설의 복원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다만 우리가 래플스 호텔에 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싱가포르 인구의 3/4이 중국계인 만큼 중국 음식의 퀄리티도 좋기에
귀국시 선물용으로 래플스 호텔의 월병을 사면 어떨까 보러 온 것.
그런데 알고보니 여기서 판매하는 월병은 냉장 보관이다.
아쉽지만 한국까지 들고가는 것은 무리.
그냥 호텔 구경이나 더 하고 가야겠다.
그러고보니 아직 오늘의 카페인 충전을 안했구나.
모닝 카페인을 위해 카페 디안(YY Kafei Dian(喜園))으로 가자.
아침을 안먹었다면 카야 토스트 같은 걸 먹어도 되겠다만
지금은 배고프지 않으니 간식으로 조그만 머핀 하나.
오픈된 공간에 실링 팬만 있어 더위는 여전하지만
베트남 커피를 연상시키는 달달하고도 진하면서 차가운 커피 한 잔이
더위도 몰아내고 정신도 번쩍들게 한다.
커피와 휴식으로 다시 기운을 차렸으니
래플스 호텔 맞은편에 있는 차임스(Chijmes)로 가보자.
차임스 또한 식민지 시절에 수녀원으로 지어졌던 곳이지만
한 때 여학교였던 시절을 거쳐
지금은 싱가포르 최고의 핫한 다이닝 공간으로 변신을 거듭한 곳이다.
당연히 식당들은 아직 영업전 |
비록 우리는 문닫힌 가게들만 봐야했지만
레스토랑과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빈백들이 널려있는 정원이
고딕 양식의 건물과 공존하고 있는 묘한 풍경.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존재들로 조화를 이룬 것이
싱가포르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짜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도 많은 판에
그냥 공원 산책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볼까?
마침 차임스 코 앞이 에스플레네이드(The Esplanade) 공원이다.
에스플레네이드 공원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중 하나인데
그런 만큼 역사에 대한 기념물들도 여럿 있고
뭣보다 마리나베이 바로 옆인지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중 하나다.
그런 에스플레네이드 공원 내에서
외관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두 개의 건축물들이 있으니
바로 에스플레네이드 극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이 극장의 별칭은 '두리안'.
(그렇다. 냄새 지독한 과일, 바로 그 두리안이다)
전체 모습이 나타나게 찍지는 못했지만 극장 외관이 마치 두리안 겉껍질을 닮았다는게 보인다 |
두리안을 닮은 에스플레네이드 극장을 지나 바닷가로 향하니
새벽에 왔던 멀라이언 쪽은 이제 인파가 몰리고 있다.
진짜 아침 일찍 오길 잘했지.
이제 점심 먹으러 가볼까나?
점심은 차이나 타운에 있는 호커 찬(Hawker Chan).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다.
새벽은 새벽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오전에는 사람 많은 곳을 피했기에
계속해서 한적한 싱가폴 모습만 봤던 우리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차이나타운에서 드디어 인파에 휩싸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호커 찬은 아예 가게 밖까지 줄이 서 있다.
어째어째 자리잡고 주문을 했다.
베스트 메뉴인 간장 닭국수(Soya sauce chicken noodle)와
굴소스 야채 볶음(Oyster sauce vegetable)에
후식으로 아유 젤리(Aiyu jelly)까지 13$니까 대략 13000원.
만만찮은 싱가포르 물가 생각하면
아침 국수가게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착한 가격이다.
맛은 어떻게보면 딱 예상되는 맛이지만
(살짝 단맛나는 간장소스에 절여진 로스트 치킨과 국수. 딱 그 맛)
근데 한편으로 진짜 군침돌게 하는 게 (맛있는) 아는 맛 아니던가.
호커 찬의 음식 또한 그랬다.
예상대로의 맛이지만 맛있다는 소리가 딱 나올 만큼 적당한 간과 당도
그리고 촉촉한 닭고기에 가늘지만 쫄깃한 면발까지.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시계를 보니
좀 있으면 부산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하겠네.
얼른 공항으로 마중나가야겠다.
PS.
호커 찬은 2020년 이후로는 미슐랭 별을 달지 못하고
빕 구르망에만 등재되어있어서
아쉽게도 이제는 가장 저렴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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