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긴 했네. 낮잠을 몇시간이나 자다니.
우선은 저녁을 만들어 먹고 시내로 나가보자.
저녁 식사는 숙소의 야외 테이블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 날씨가 워낙 좋았었지만
사실 베르겐(Bergen)은 1년에 2/3는 비가 오는 도시.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진 않으니 저녁 시내 구경을 다녀보자.
어쨋건 식사는 다시 방 안으로 가져가야겠군. -_-;;;
비오는 Torgallmenningen 광장 |
복지가 좋기로 유명한 북유럽이지만
스타방에르나 베르겐에서도 구걸하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외모를 봐선 아마도 난민 출신인 듯하다.
정돈되고 여유있는 사람들 속에 극소수인 그들이
삶의 기회를 찾아 자신의 의지로 온 것이겠지만
또다른 박탈감이나 좌절감을 느끼진 않을런지...
(물론 생사를 넘나들던 곳 보다야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이 곳 물가를 생각하면 미약한 금액이긴 해도
10 kr(1400원)를 건네며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
보슬비 맞으며 수산 시장 쪽으로 나선 우리는
이전에 묵었던 숙소에서 추천해준 바를 가기로 했다.
수산 시장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가니
불빛과 몇몇의 사람들이 우리의 목적지가 어딘지 알려주었다.
바로 우리의 스트레스를 날려줄 가게 노 스트레스(No Stress).
밤 10시가 다되어가는 시간 때문이지
광장이고 뭐고 길에서 사람들 마주치기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역시 바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오히려 한 잔 마실 자리도 없어 보여서
가게 입구에서 기웃거려야 했다.
남는 좌석은 없지만 바텐더 앞자리가 비어 보여서 들어가는데
갑자기 웬 아주머니가 아내를 보며 반갑게 웃는다.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이신가?
그런데 살짝 업되어 보이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처음 왔냐고 묻더니
취기가 있어보이는 발음으로 "Tr~y Chili Martini~"를 얘기하신다.
그러더니 자기 일행 있는 곳에 가서 착석하시네.
어허허;;; 그냥 한 잔 하시고 기분 좋아진 손님이셨구나.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지만...
이미 아까 아주머니가 얘기한 칠리 마티니만 우리 머리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그 칠리 마티니가 대표메뉴중 하나기도 하네 뭐.
여기 칠리 마티니 하나랑 논알콜 칵테일 하나요~
정말로 고추가 들어가있는 정직한 칠리 마티니 내 논알콜 칵테일은 메뉴가 따로 없어서 바텐더에게 맡겼다 |
칠리 마티니가 나오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웃었다.
올리브가 보이는 투명한 마티니 대신 나온 것은
체리빛깔 빨간 칵테일과 그 위에 놓인 앙증맞은 고추.
정말 고추가 들어간 칵테일이었던 것이다.
아내나 나나 칵테일을 별로 안마셔봤으니
진으로 만들었는지 보드카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내 말로는 색깔만큼이나 체리처럼 상큼한 맛이 좋았다나?
(고추가 들어갔지만 딱히 매콤한 맛은 없었다.)
드라이한 거로 유명한 마티니랑 안어울리는 맛인 것 같지만
아내 맘에 들었으면 된거지 뭐.
내 논알콜 칵테일도 새콤한 과일맛이 스트레스를 날려주었다.
아내와 음료를 홀짝거리며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즐기던 중
아까 우리가 들어올때 칠리 마티니를 권했던 아주머니가 또 왔다.
"칠리 마티니 어때? 좋지?"
아내가 웃으면서 맛있다고 끄덕였다.
그러고는 또 아주머니는 웃으며 우리를 지나쳤다.
거 참 유쾌한 아주머니일세. ㅋㅋㅋ
6일간 3번의 트래킹이라는 강행군으로 지쳤던 우리에게
꿀맛같은 휴식일이었던 오늘.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유쾌했던 에피소드와 상큼한 맛의 음료들 덕에
가게이름처럼 우리의 스트레스는 날아갔다.
내일은 베르겐 시내를 또 구경 다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