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하카다 항구 위 고가도로를 달리고 얼마 안지나서
지도상으로 니시 공원이 우리 시야에 들어올 때 쯤,
아뿔사, 우리는 목적지를 잘못 정했음을 느꼈다.
니시 공원은 부모님에게는 오르기 힘든 야산이었던 것이다.
어쩌지 싶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것을 어쩌겠나.
잠시 후 버스가 한적한 니시 공원 서쪽 입구에 도착했고
하차 후 공원으로 들어서는데 큰 리트리버와 산책 나온 주민 분을 만났다.
정작 개를 키우는 우리는 웃으며 한번 보고는 지나쳤지만
오히려 부모님이 반갑다며 인사하시네.
예전에 작은 강아지도 무섭다며 도망가셨던 어머니가
길에서 만난 큰 개와도 반갑게 인사하시게 되다니.
공원으로 들어서자 예상대로 여지없이 오르막길이다…;;;
올라가는 길은 벚꽃 나무가 띄엄띄엄 있어서
만개한 벚꽃이 예쁘기는 하지만 조금 아쉽다.
그래도 벚꽃 명소로서 유명하다는 곳이니
위로 좀 올라가보면 명성에 맞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조금 더 올라가다보니 완연한 숲길이다.
도심 한가운데서 고요한 숲길 산책 기분이 좋기는 하다만
계속되는 오르막길은 부모님에겐 너무 힘든 길이다.
결국 부모님은 벤치에서 앉아 기다리시기로 하고
아내와 나 둘이서만 더 올라가보기로 했다.
몇분 걸어올라가서 중앙전망광장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올라오던 길에 비하면 좀더 벚꽃이 많긴하지만
벚꽃으로 유명한 공원이라는 명성에 비하면 뭔가 아쉽다.
그래도 하카타 항을 내려다보는 내려다 보는 뷰와
벚꽃, 녹지가 어우러진 모습은 꽤나 마음에 든다.
올라오는 길의 한적함에 비해 사람들도 여럿 모여있다.
우리끼리의 여행이면 여기서 망중한을 즐기겠다만
밑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사진 몇장만 찍고 얼른 내려가자.
오호리 공원을 갔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왔던 길 그대로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자.
마트에서 딸기와 주전부리 약간을 사들고 숙소에 돌아왔다.
일본식 가옥인 숙소는 두 개의 다다미 방으로 되어있고
미닫이 문을 열어 두 방을 하나의 방으로 만들 수 있다.
쉬면서 얘기 좀 하다보니 어느새 저녁 식사할 시간인데
부모님은 어디 나가기엔 힘이 드신지
근처 마트에서 간단한 요기거리 사서 해결하시겠다고 한다.
텐진 야타이가 숙소에서 걸어서 갈 만하다고 설득을 해봤지만 요지부동.
이제는 조금만 움직여도 부모님이 힘들 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쨋건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가긴 해야지.
노상 포장마차라는걸 거의 볼 수 없는 일본이지만
후쿠오카에는 인기있는 포장마차 거리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예전에 가봤던 나카스(中洲)이고
나머지 하나가 이번 숙소 근처인 텐진(天神)인데,
강변의 포장마차라는 운치의 나카스가 있다면
텐진은 후쿠오카 최대 번화가란 특징이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포장마차라해도 인기 있는 집이 있어서
몇몇 집들은 영업 개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대기 줄이 늘어진다.
우리가 사전 조사했던 가게인 야타이 뿅키치(屋台屋ぴょんきち) 또한
맛집이라 알려져서 그런지 이미 줄이 좀 있는 상태.
그래도 많이 길지는 않으니 기다려보자.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는 났다.
하지만 역시 포장마차답게 비좁아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
한편으로 괜히 부모님 억지로 모시고 왔으면
복잡하고 불편하다고 한 소리 들었겠다.
이것도 한편으론 전화위복인 건가.
처음엔 포장마차 투어라도 돌 듯 했던 우리였지만
막상 자리에 앉고 보니 썩 내키는 음식도 많지 않고
정신없는 복잡함에 약간은 피로감도 생겼다.
그냥 간단한 요리 몇개만 먹고 자리를 옮겨야겠다.
처음엔 포장마차 호핑 하겠다며
다양하게 먹어보기 위해 밥이나 면 종류를 피해서 시켰다만
와중에 시킨 음식들은 우리에겐 좀 짰다.
술안주 느낌의 음식들이라 그랬을려나?
거기다 가격은 음식 질에 비해 비싸다고 생각되는 정도.
(사진의 음식들이 다 합해서 1800엔......)
결국 우리는 호기롭게 나왔던 마음과는 달리 불과 1시간여 만에 퇴각했다.
하지만 먹은게 많지 않으니 다른 요깃거리는 찾긴 해야겠다.
계획은 어그러지고 텐진 주변에 음식점을 찾아봐둔건 별로 없고...
그렇게 텐진과 하루요시 주변을 어슬렁 거리던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후쿠오카 음식중 하나인 모츠나베 가게, 하카타멘모츠야(博多麺もつ屋).
벽에 붙어있는 사인들을 보니 뮤지컬 팀들이 여기 많이 왔다갔나보다 |
바 형태의 테이블에 일렬로 앉아야 되는 작은 가게지만
벽에 빼곡히 붙어있는 사인들과 구글 지도 평점을 보면 만만한 집은 아닌 듯.
자리마다 작은 1인용 전골 화로가 있고 메뉴도 1인용 하프 사이즈가 있다.
우리가 많이는 아니었어도 좀전에 먹고 온게 있다보니
요리는 모츠나베 하프 하나와 조림 반찬 하나만 시켰다.
곱창을 싫어하지는 않아도 즐기는 편이 아닌지라
"이거도 후쿠오카 음식이니까 먹자" 하고 들어는왔지만
음식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웬걸? 이 모츠나베 맛있는데?
앞서 포장마차에서의 아쉬움이 싹 사라졌다.
식사 잘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보니
어머니는 숙소 근처의 낡은 동네 목욕탕에 갔다오셨단다.
시설은 오래되서 낡디 낡은 작은 목욕탕이었다지만
오히려 그 점이 향수를 자극하셨는지 얘기하시는 어머니 표정은 좋아보인다.
그럼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내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자.
PS.
나중에 알고보니 니시공원의 벚꽃포인트는 우리가 간 쪽이 아니라
남쪽 입구에 있는 신사주변이었다. -_-;;;;;;
조금만 더 열심히 찾아보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